시베리아의 수도(首都)로 불리는 노보시비르스크 철도대(공식 명칭 교통대) 유학생들의 7년째 한결 같은 새해 소망이다. 영하 40도의 혹한(酷寒)과 눈 폭풍 속 시베리아에서 맞는 새해에는 뭔가 달라졌으면 하는 기대가 크다. 이들은 언론에서 철도 얘기만 나오면 귀를 쫑긋한다. 철도문제는 곧 자신들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에서다.
2008년 마지막 날 대학 본관에서 지척인 기숙사. 김현철 학생회장과 14명의 유학생들은 한 해를 정리하는 모임을 하고 있다. 김 회장은 "결코 꿈을 접지 말자. 언젠가 우리가 시베리아를 질주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과연 그날이 올지 회의감에 사로잡혀 있다. 이들의 새해 소망은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
철도대 유학생들은 2000년대 초 김대중(金大中) 정부가 '대륙 진출과 물류혁명을 가져올 수 있다'며 야심 차게 추진한 '철(鐵)의 실크로드'사업을 믿고 유학 길에 나섰다. 시베리아 철도대학과 자매결연을 맺은 한국 철도대는 미래의 대륙 진출을 꿈꾸며 원대한 포부를 가진 젊은이들을 선발해 유학 보냈다. 유학 초기만 해도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넘어 단숨에 유럽까지 기차를 몰고 내달리려던 의욕이 넘쳤다. 더구나 북한 학생까지 이곳으로 유학 오면서 보이지 않는 경쟁 의식도 싹텄다.
시베리아 철도대에서는 지난해까지 5년 동안 남한 학생 25명과 북한 학생 25명이 24시간 경쟁하며 공부했다. 남북한 학생들은 2001년부터 TSR과 TKR 연결사업이 국제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각각 러시아 최고 철도 전문학교인 이 대학으로 유학 왔다. 북한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노보시비르스크를 방문한 뒤 유학생 파견을 결정하기도 했다. 북한은 동유럽 붕괴와 더불어 유학생들을 모조리 소환했던 1990년 이후 이곳에 10여 년 만에 다시 유학생을 파견했다.
최근 1년 동안 남북한 철도 연결에다 경의선 철도 운행이 시작되면서 작은 희망이 살아나는 듯했다. 부산발(發) 우리 철도가 러시아와 북한의 경계인 핫산역(驛)을 넘어 대륙으로 운행될 날이 오리라는 기대도 생겨났다. 그러나 북한측이 지난해 12월 1일부터 경의선 남북철도 운행 중단을 통보하면서 힘이 한풀 꺾였다. 겨우 살아난 희망마저 실망으로 반전됐다.
노보시비르스크 철도대 재학생은 15명. 지난해까지 25명이었지만 졸업과 진로 변경으로 학생 수가 확 줄었다. TKR·TSR 연결에 대한 기대가 낮아지면서 지난해부터 2년 동안 새로운 유학생도 없다. 정말 부산에서 출발하는 대륙 횡단 열차는 꿈이었을까.
송영웅, 최홍석, 박운우, 이동수, 이우진군 등 재학생들은 "철도대학 입학 동기가 TSR과 TSR 연결사업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토목 전공인 최군은 다리·터널 건설 전문가, 박군과 이군은 세관 전문가를 꿈꾸고 있을 정도로 목표 의식이 확실했다.
유학 생활을 마치고 군에 입대한 최평화군도 "공부하면서 점점 희망이 사라져갔다. 철도 연결사업 자체가 기약이 없다는 게 너무 속상했다"고 말했다.
유학생들은 철도 연결이건 뭐건 남북한 신뢰가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지금도 남북관계는 화해보다 대치 분위기로 치닫는 게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졸업생들이 군대를 가거나 진로를 바꾸는 모습을 보고 철도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지 고민 중이다.
TSR·TKR 연결사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여전히 변죽만 울리고 있다. 정부는 철도를 통한 대륙 진출과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측면에서 추진한다지만 가시적인 효과가 없다.
철도대 유학생들은 "정부가 '대륙철도'니 '철의 실크로드'니 말만 장황하게 늘어 놓은 것 아니냐"며 "TSR·TKR 연결사업을 정책 홍보용으로 내세운 것인지, 정말 실현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정말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새해에는 우리에게 희망을 포기하지 않도록 정부가 철도연결 사업에 조금이라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