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근의 국제금융단상)`수육`같은 시장

  • 등록 2005-05-26 오전 8:05:05

    수정 2005-05-26 오전 8:05:05

[edaily] 며칠전 저녁 어스름에 허름한 설렁탕집을 찾아 아는 얼굴들 몇이 지친 마음도 달랠 겸 소주 한잔 하자고 모였습니다. 수육 한 접시에 소주를 시켜놓고 하루의 전투를 마감하면서 언뜻 고기 한점을 집어 입에 넣으며 그런 이야기를 했지요. 수육의 `수`자가 한자로 무슨 글자인지 궁금해 동석한 사람들 중에 아는 사람이 있나 했더니 다들 고개만 흔들고는 대답들을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물에 불린 것처럼 부드럽게 삶은 고기라 물 `수(水)`라는 사람도 있었고, 아마 옛날 수(隋)나라 사람들이 먹던 고기가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고 상상해본 사람도 있었습니다. 내친김에 이번엔 제육볶음의 `제`자가 무슨 글자냐 하고 물으니 역시 마찬가지로 궁한 해석들 뿐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사전을 집어들고 찾아보았더니 수육의 수자나 제육의 제자 모두 순 우리말이라 한자로는 없었습니다. 다만 수육은 원래 삶은 고기를 뜻하는 숙육(熟肉)에서 진화된 말로 발음구조상 수가 된 것이며, 제육 역시 돼지고기를 일컫는 저육(猪肉)에서 나온 말로 발음편의상 제육이 된 것 같다는 식의 설명이 있었습니다. 원래 쇠고기를 삶은 것만을 수육으로 불리던 것이 이젠 말의 진화인지 퇴보인지 모르게 뒤죽박죽 사용하여 돼지고기 삶아 썰어놓은 제육보쌈같은 것에도 돼지고기 수육이라고 버젓이 붙어있고, 아귀찜옆에 아귀수육도 있는가 하면, 영양탕집 메뉴에도 이젠 가장 높은 위치에 수육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수육이란 음식에 대한 정의도 빈약하고 음식점마다 삶아내는 고기의 부위나 재료가 다릅니다. 아마도 삶아내는 조리법도 함께 삶는 부속재료나 양념에 따라 다양할 것 같으면서도 일정한 맛이나 크기, 함께 내놓는 곁재료의 내용이나 먹는 방식들이 정해지지 않은 음식이 수육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좋게 보면 응용력이나 신축성이 뛰어난 것이고 반대로는 표준화가 안된 미숙한 음식이란 평을 듣기도 할 것입니다. 요즘 국제금융시장의 화두는 아무래도 중국 위안화의 절상이겠지요. 이미 오래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우려도 우려도 맛깔나는 진국 설렁탕처럼 위안화 문제는 결코 얕잡아 볼 수 없는 무게를 가지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바로 중국의 코 앞에서 모든 변화를 읽어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어쩌면 원화환율보다도 더욱 중요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서방 자본주의 세계에 빗장을 열어준 지난 1971년의 핑퐁외교로부터 본격적인 개혁과 개방의 기치를 내건 1978년을 중국식 자본주의의 시작으로 본다 해도 불과 28년의 햇수에 불과한 중국의 경제가 이제는 세계인구의 3분의1을 차지하는 경제대국으로의 발돋움을 했습니다. 드디어 작년에 WTO에 정식가입하며 세계 최강이란 미국과의 맞대결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위안화의 문제는 더 이상 강건너 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긴 미국의 그 강한 압력에 대하여 서방 자본주의의 300년 역사에 비하면 불과 30년도 안되는 중국 자본주의 역사의 가느다란 연명줄인 환율에 대하여 너무 추잡하게 밀어붙이지 말라는 항변 또한 일리있는 주장이기도 합니다. 어제는 쿵취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10%절상 거부발언이 뉴스에 떴습니다. 물론 기사 제목은 절상거부로 나와 마치 절상을 전혀 안하겠다는 듯이 보이기도 하지만 내용은 5% 정도의 절상이후 점진적인 환율 조정을 하겠다는 내용이 숨어 있습니다. 최근 싱가포르의 바스켓 통화제도를 도입하겠다는 제스쳐나 홍콩의 완전 페그제를 정말 눈꼽만큼의 변동환율제로 바꾼 것이나 정작은 위안화의 절상에 대한 일종의 시험이나 시장의 반응떠보기 같은 것입니다. 또하나 생각할 점은 중국 위안화가 갖는 대표성의 문제입니다. 이제는 중국 위안화의 위치가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대표통화의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지요. 즉 아시아 통화들에 비하여 달러화의 상대적인 약세 운운하는 주장들은 궁극적으로는 위안화를 지칭하면서도 은근슬쩍 원화나, 대만 달러, 타이바트며 말레이시아 링기트 등을 아우른 거대한 아시아 통화권을 통칭하는 개념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위안화의 절상은 중국 하나의 절상이 아니라 전체 아시아 통화의 절상과 궤를 함께 하므로 결코 만만히 대할 일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최근 상대적으로 견조한 미국 경제에 대한 반작용으로 엔화와 유로화에 대한 달러화의 강세전환에 더하여 아시아 통화의 절상이란 거의 재앙과 같은 변화란 것입니다. 어제 OECD의 세계경제 전망자료에서 유독 중국과 미국만이 당초 올해의 경제성장 전망을 높인 것은 매우 흥미로운 시사점입니다. 각각 당초 8%, 3.3%에서 9%, 3.6%로 올렸지요. OECD 30개국의 전체 경제성장을 2.9%에서 2.6%로 낮추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덩어리가 큰 두나라의 성장을 높였으니 나머지 국가들의 성장은 그야말로 죽을 쑨단 표현이 맞을 정도입니다. 아무튼 그런 두나라의 싸움에 끼어 우리는 등이 터지는 형국입니다. 다만 좋으나 싫으나 중국의 관문 역할을 해야하는 우리 경제의 모습에서 어찌되었든 중국의 경제성장이 가져올 부산물로서의 경제적 과실을 제대로 따먹을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그나저나 유럽연합이 문제군요. 이번 일요일의 국민투표에서 거의 부결될 것으로 예측됨에 따라 연이어 투표할 네덜란드의 투표에 까지 영향을 줄 것이고 유럽 전체의 단합이나 경제적 견고함에 분명 부의 영향을 줄 것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그 덕에 최근 유로화의 인기는 하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태리, 독일 등 유럽 본토의 경제회복이 지지부진한 것도 큰 영향이지만 말입니다. 석유값이 좀 안정되나 싶더니 역시 그게 그렇구요. 수급문제만 나오면 언제나 공급보단 수요강세가 대세니 아마도 올 한해는 석유가격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사는 게 어떨까 합니다. 그보단 오일달러가 넘치는 중동에 달려가 어떻게든 한밑천 걷어오는 것이 국가경제 전체에서도 상책일 것 같습니다. 제일 좋은 것은 중동에 가서 몸으로 돈을 벌어오는 것보다는 그 돈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투자하도록 이곳의 투자환경을 잘 마련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대처방안일 것입니다. 국제시장을 돌아보면 자꾸만 얇게 썬 수육 한접시에 소주 한잔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쫄깃한 질감의 고기 한점과 생마늘 한조각을 얹어 아삭거리며 안주로 씹는 그 맛이 말입니다. (대우증권 트레이딩 영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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