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의 여름날이었다. 끝나지 않을 것 만 같았던 코로나가 절정에 다다르던 어느 날, 케이팝 프로젝트는 야심 차게 시작되었다. 몇 편의 에피소드로, 누구와 어떤 내용을 담을지 그리고 우리가 맞이할 수많은 난관을 전혀 예상치 못한 채 말이다.
영화의 제목을 조금 변형해 보자면 그 당시 우리는 ‘지금도 맞고 그때도 맞는’ 이야기를 찾고자 했다. 말하자면 이 프로젝트가 케이팝 다큐멘터리의 바이블이 되길 희망한 셈이다. 관련 논문과 책들을 찾아 읽었고, 매주 쏟아지는 최신 기사들을 놓고 토론했다. 팬과 산업 관계자들을 만나 이 프로젝트의 배경을 설명하고, 그 반응을 살피는 것 또한 일상이 되었다. 당연히 각자의 다른 의견들이 존재했지만 분명했던 것은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케이팝은 과거의 회고가 아닌 현재로부터 출발해 그 미래를 그려보자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했던 것은 내 안의 ‘국뽕’을 지우고 “두유 노 (Do you know…?)”로 시작되는 질문의 관성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었다.
|
LA 전체가 들썩였다는 일부 보도와는 달리 마주한 LA는 평온했다. 7만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SO-Fi Stadium’로 다가서자 도시의 풍경은 빠르게 달라져 갔다. 보라색 후드를 입거나 티셔츠를 입은 다양한 인종과 연령대의 팬들이 공연 전날임에도 굿즈를 사기 위해 수 천명에 가깝도록 줄 서 있었다. 공연 당일이 되자 스타디움 일대는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을 만큼의 팬들로 가득했다. 눈에 띄는 촬영 장비를 지닌 우리를 향해 팬들은 환호하고 앞다투어 인터뷰를 자청해다. 고백하건 데 나는 그때 사라졌다고 믿었던 마음 속 국뽕이 저 깊은 곳에서 다시금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BTS 멤버들의 이름을 연호하고 한국어 노랫말을 따라 부르는 수 만 명의 외국인 팬들에 둘러 쌓여 하루 나절을 취재하고 나니 마치 세계가 케이팝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늦은 밤이 되어 공연장으로부터 멀리 벗어나자 도시는 다시금 고요해졌다. 뜨거웠던 함성의 존재를 덮어버리는 깊은 침묵 속으로.
이 기묘했던 극과 극의 체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에피소드가 전체 이야기 가운데 중심에 위치한 네 번째 에피소드 ‘What the K’이다. 제작진은 케이팝이 만들어낸 글로벌 단위의 문화적 현상에 대해 몇 가지 공통의 질문을 던져 보기로 했다. “케이팝은 한국말로 만들어져야만 하는가?”로 시작해,“케이팝은 한국인 멤버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가?”, “케이팝은 한국식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의 결과여야 하는가?”, “케이팝은 아이돌 위주의 음악을 말하는가?” 등등.
|
케이팝의 정의와 경계는 갈수록 흐려지고 있다. 일본에서 데뷔한 JYP엔터테인먼트 소속의 9인조 걸그룹 니쥬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일본에서 데뷔하고 일본에서 활동하지만, 케이팝의 대표적 페스티벌인 케이콘에 출연하고, 도쿄에 위치한 T 레코드샵 케이팝 판매 층에서 소개되고 팔린다. 필리핀 팝의 약자, P POP을 주장하는 필리핀의 보이그룹 SB19은 케이팝의 육성 시스템을 통해 발굴된 케이스로, 케이팝의 군무와 사운드 시스템적 유사성이 존재한다. 이 예외적 사례들은 이제 차고 넘친다. 그리고 새로운 현상과 그룹의 출현에 대해 케이팝 감별사가 등장해 이들이 케이팝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다소 옛스럽게 느껴진다.
|
다시 정정해 말해 본다. 우리의 기획은 “그때는 맞지만 지금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찾아 나선 모험이었다고. 그게 진짜 케이팝의 이야기라고
|
①‘케이팝 제너레이션’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 차우진 스토리 총괄 프로듀서
②보이그룹은 언제까지 아이돌이야? / 김선형 PD·머쉬룸 컴퍼니 대표
③케이팝 뒤에 사람 있어요 / 하박국 스토리 프로듀서
④케이팝, 구멍이 뚫린 상자 / 이예지 머쉬룸 컴퍼니 대표
⑤“케이팝, 왜 하세요?” / 김윤하 스토리 프로듀서
⑥그래서, 케이팝은 어떻게 되나요? / 임홍재 제작 책임 프로듀서·필름 팍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