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예술 전문성 강화 위해…오페라·클래식 제작 늘려갈 것"[만났습니다]

[장형준 예술의전당 사장 인터뷰]①
연주자·교수로 예술의전당과 친숙
문화예술 전반에 일조할 수 있어 보람
변화 이끈 직원들 공연장 큰 자산
퇴임 때 '소통 잘했다' 평가 듣고 싶어
  • 등록 2022-11-29 오전 6:05:45

    수정 2022-11-29 오전 10:17:17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예술의전당은 저에게 익숙한 장소입니다. 피아니스트로 공연도 했고, 대학에 있을 때도 학교와 예술의전당을 자주 오갔으니까요. 사장 취임 이후 4개월여가 지났는데 예술의전당에 빠르고 순조롭게 적응하고 있습니다.”

최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장형준(60) 예술의전당 사장의 표정에선 여유가 느껴졌다. 피아니스트 출신으로 1995년부터 서울대 음악대학 교수로 후학 양성에 매진해온 그는 지난 6월 17일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예술의전당을 3년간 새롭게 이끌어갈 17대 사장으로 임명됐다.

대학교수에서 국내 대표 문화예술기관 대표로 역할은 달라졌지만, 장 사장은 변화한 역할에 빠르게 적응했다. 비결은 피아니스트이자 음악대학 교수로 누구보다 예술의전당과 가까이 지냈기 때문이다. 장 사장은 “수업이 끝난 뒤에도 동료와 학생들의 많은 연주가 있었기에 학교 못지않게 자주 찾은 곳이 예술의전당이었다”며 “대학교수로 학교에 있는 동안이자 교육자이자 예술가로서 예술의전당의 발전 과정을 지켜봐 왔다”고 말했다.

장형준 예술의전당 사장이 최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가진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 앞서 CJ토월극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네 살 때 피아노 소리에 매료돼 예술의 길로

장 사장 또한 피아니스트로 예술의전당 무대에 자주 올랐다. 지난 9월 말 첫 기자간담회에서 1993년 ‘제6회 교향악축제’ 리허설 중인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장 사장이 예술의전당에서 가진 가장 최근 공연은 2018년 IBK챔버홀에서 연 슈만 콰르텟 공연이다. 장 사장은 “저 역시 연주자다 보니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연주 활동이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장 사장이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것은 4세 때부터다. 누나 두명 때문에 집에 들여놓은 피아노에 오히려 장 사장이 더 빠졌다. 누나들도 현재 예술계에서 활동 중이다. 큰 누나는 설치미술가 장영혜, 둘째 누나는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영상원장을 지낸 장윤희 한예종 교수다.

“피아노 소리가 참 좋았어요. 누나들이 피아노를 치는 걸 따라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피아노가 제 인생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죠. 물론 집안에선 반대가 심했어요. 당시엔 ‘남자가 무슨 피아노를 전공하느냐’는 소리가 나왔으니까요.”

피아노가 너무 좋았던 장 사장은 죽기 살기로 연습해 서울예고를 거쳐 맨해튼 음악대학에 입학했다. 장 사장은 “그때만 해도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 중 70% 정도는 나처럼 자발적으로 음악을 한 경우였다”며 “어려운 환경에 있는 학생들도 많았기에 나중에 교수가 된 뒤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찾아주고 진로를 도와주는 일에 힘을 쏟았다”고 말했다.

피아니스트에서 음대 교수, 그리고 이제는 예술의전당의 경영자가 됐지만 장 사장은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로 통한다는 생각이다. 예술이 그 중심에 있다.

“음악대학 교수도, 예술의전당 사장도 큰 틀에서 예술을 다룬다는 점에서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감도 있습니다. 학교에 있는 동안에도 페스티벌이나 기획공연을 많이 했고, 외국 대학과의 교류에도 많이 관여했고요. 학교 있을 때는 교육을 통해 예술에 기여했다면, 지금은 문화예술 전반에 일조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아 기대가 큽니다.”

장형준 예술의전당 사장이 최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문화예술 향유 플랫폼 선도 계획

장 사장의 임명 소식에 공연예술계 일각에선 의아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피아니스트로 연주 활동을 이어오긴 했지만 공연예술계 전반에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의아함은 지난 9월 기자간담회 이후 어느 정도 불식됐다. 이 자리에서 장 사장은 앞으로 예술의전당을 클래식·발레·오페라 등 순수예술을 중심으로 한 공연장으로 정체성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순수예술 장르별 전문성 강화 △미래 예술 세대 성장 지원 △문화예술 향유 플랫폼 선도 등이 주요 운영방향이다.

이를 위해 예술의전당이 직접 기획·제작하는 오페라와 클래식 공연을 점차 늘려갈 계획이다. 첫 시작으로 지난 10월 3회에 걸쳐 공연한 ‘SAC 오페라 갈라’는 뛰어난 무대 연출과 높은 완성도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내년엔 예술의전당 전관(全館) 개관 35주년 기념 오페라 ‘노르마’, 2024년엔 세계적인 테너 이용훈의 한국 오페라 데뷔 무대 ‘오텔로’, 2025년엔 창작 신작 오페라도 선보일 예정이다.

장 사장은 예술의전당의 변화를 가능하게 한 것은 직원들이라고 치켜세웠다. 그가 빠르게 예술의전당에 적응할 수 있었던 또 다른 비결 또한 직원들에 대한 강한 신뢰다. 장 사장은 “이번 ‘오페라 갈라’에 출연한 테너 백석종의 경우 ‘네순 도르마’를 불러 ‘파바로티가 돌아온 것 같다’는 반응을 얻었는데, 백석종을 섭외한 것은 예술의전당 직원의 힘이었다”며 “예술의전당 직원들이야 말로 예술의전당의 가장 큰 자산이자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임기가 끝날 때 가장 듣고 싶은 평가도 직원들과의 소통을 꼽았다. “제 업적은 제 후대 사장이 오고 나면 그때 이뤄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예술의전당에서 나갈 때 직원들에게 함께 일해 행복했다는 기억과 예술의전당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줬다는 평가가 남았다면 만족스러울 것 같습니다.”

장형준 예술의전당 사장이 최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가진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 앞서 오페라극장 로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장 사장은…

△1962년 서울 출생 △미국 맨해튼 음대 피아노과 학사·석사·박사 △1995년 서울대 음악대학 피아노과 교수 △2005~2009년 스코틀랜드 국제 피아노 아카데미 예술감독 △2008~2017년 서울대 국제 피아노 아카데미 조직위 위원 △2009~2020년 클리블랜드·더블린·본 베토벤·에네스쿠·서울 국제·에피날 모스크바 등 국제 피아노 콩쿠르 심사위원 △2012~2014년 한국 피아노 듀오 협회 회장 △2022년 6월~현재 예술의전당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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