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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부인은 대통령의 부인 자격으로 다양한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빈번하다. 다만 공식 행사 외에 활동 여부는 영부인의 판단영역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의 경우 재임 기간 내내 대외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그림자 내조’였다. 손 여사는 구설에 오르는 걸 미연에 방지했다. 대신 손 여사는 매일 아침 신문을 읽으며 언론에 비친 남편의 활동을 꼼꼼히 살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는 적극적으로 대외 활동에 나선 인물이다. 육 여사는 ‘양지회’를 만들어 봉사활동과 지적장애 아동을 위한 사업을 벌였다. 육 여사의 활동반경이 넓어지자 이를 공식적으로 보좌하고 지원하기 위해 청와대 제2부속실이 만들어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전 여사는 재임 기간 중 영부인 최초로 단독 해외 순방을 다녀왔다. 2002년에는 유엔 아동 특별총회에서는 김 전 대통령을 대신해 임시회의 주재, 기조연설 등을 했다. 이 전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 동지’이자 여성운동가였던 활동이 영부인 활동에도 영향을 미친 케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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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여사는 역대 영부인의 행보와 달랐다. 대선 기간 개인적인 논란에 휩싸이면서 노출을 자제했다. 윤 대통령 옆에선 김 여사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김 여사가 공식석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달 10일 취임식 때다. 김 여사는 당시만 해도 윤 대통령과 일정한 거리를 두며 ‘그림자 내조’에 집중했다. 지난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 때는 만찬 전 잠시 만나 인사를 나누는 정도였다.
김 여사의 최근 행보는 대선 기간 밝힌 ‘조용한 내조에만 집중하겠다’는 약속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특히 김 여사의 의도와 달리 첫 단독 행보에서 지인 동행과 코바니콘텐츠 출신 직원 근무 동행 논란이 일면서 김 여사의 행보에 담긴 메시지 보다는 잇따른 잡음이 계속 도마에 올랐다. 6·1 지방선거 압승으로 탄력이 붙던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도 다소 주춤하고 있다.
이런 탓에 여권을 중심으로 제2부속실 부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 상임고문단은 지난 21일 윤 대통령과 오찬에서 김 여사의 의전과 일정을 담당할 대통령실 공식 직제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도 영부인을 조력할 조직이 필요하다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다만 구체적인 방법론에서는 차이점을 보였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국가 이익의 관점에 대통령 부인으로서 할 일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은 안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김 여사가 아무 해명 없이 내조를 하고 있다. 영부인으로서 그러면 안된다”면서 “국민들은 대통령 부인으로서 김 여사를 바라 본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2부속실이든 대통령실 내 조직실이든 김 여사를 지원하는 조직을 빨리 재정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단순 지원조직을 넘어서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관리 조직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영부인은) 대외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면서 “김 여사 활동을 지원해주는 게 아니라 관리하는 부서가 필요하다. 메시지 전문가들을 통해서 관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