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다시 ‘전문성’ 논란으로 귀결된다. 국민연금이 최근 유명무실했던 주주대표소송 절차를 정비하는 작업에 나서면서 경영계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대표소송의 개시 여부를 결정하게 될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가 전문성과 독립성이 충분히 갖춰진 조직인지가 도마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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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 열린 기금운용위원회에서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 활동에 관한 지침 개정안’을 논의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현행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에 규정돼 있는 수탁자책임 활동의 하나인 ‘대표소송’의 개시 결정 권한을 기금운용본부에서 수탁위로 바꾸는 것이다. 개정안은 다음 회의에서 재논의될 예정이다.
현재 수탁자지침은 국민연금이 ‘보유하고 있는 상장주식에 대해 기업이 이사 등으로 인해 손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추궁 등을 게을리하는 경우 이사 등의 책임을 추궁할 소송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표소송은 의결권 행사, 비공개 대화, 비공개·공개 중점관리기업 선정 등과 비교하면 상당히 강력한 수준의 수탁자활동이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국민연금이 진행했던 가장 높은 단계의 수탁자활동은 지난 2018년 대한항공을 대상으로 공개서한을 발송한 것 정도다.
특히 이번에 국민연금이 추진하는 수탁자지침 개정안이 통과되면 2020년 상법 개정에 따라 도입된 다중대표소송도 수탁위 결정으로 개시가 가능해진다. 국민연금이 직접 투자하는 기업뿐 아니라 이들의 자회사 이사 등도 대표소송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수탁위는 경영자 단체, 근로자 단체, 지역가입자 단체에서 추천한 1명씩 총 3명이 상근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마찬가지로 경영자·근로자·지역가입자 단체에서 추천한 2명씩 총 6명이 일부 위원으로 참석하고 있다. 국민연금 전문가 타이틀이긴 하지만, 인적 구성에서 기금운용본부와 직접적인 접점은 없다.
업계 관계자들은 수탁위의 전문성이 충분치 않다고 지적한다.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인적 구성이다. 국민연금에는 수탁위 외에도 위험관리·성과보상전문위원회와 투자정책전문위원회가 있는데, 이들 위원회는 수탁위와 동일하게 9명으로 구성돼 있지만 이 가운데 외부 전문가가 3명씩 포함돼 있다.
“복지부 입김 불가피…전문성 강화 필요”
반면 수탁위는 9명 모두가 경영자·근로자·지역가입자 단체 중 한 곳의 추천을 받아 일하고 있어 전문성 이전에 자신을 추천해준 단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성격이 짙을 수밖에 없다. 수탁위가 본격적으로 대표소송 여부를 논의할 때 동수로 구성된 각 단체 대표 위원들이 접점을 찾지 못하고 논의가 공회전할 가능성도 나온다.
이 때문에 조만간 있을 수탁위의 인적구성 변화에도 관심이 쏠린다. 수탁위를 포함한 전문위원회 3곳은 상근 전문위원 3곳이 돌아가며 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수탁위원장은 현재 근로자 단체 추천인 원종현 위원장에서 지역가입자 단체 추천인 신왕건 위원장으로 바뀔 예정이다.
경영자 단체 추천 외부 위원도 교체될 전망이다. 기존에 활동하던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가 한국항공대 총장으로 취임하면서 조만간 위원직을 내려놓기 때문이다. 한 국민연금 관계자는 “경영자 단체에서 대표소송을 염두에 두고 강경한 입장을 가진 위원을 후임으로 추천한다면 수탁위가 그야말로 첨예한 이해관계 대립의 장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 내·외부에선 대표소송을 수탁위에 맡기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수탁위 구성에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단순히 책임투자 관점뿐 아니라 국민연금기금의 수익률 등을 고려한 결정을 위해서 기금운용본부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국민연금 전문위원회 관계자는 “수탁위가 전권을 쥐게 되면서 기업들은 수탁위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불안을 느낄 수 있다”며 “기금운용본부 인원이 수탁위에 참여하도록 하거나 수탁위 구성원 숫자를 늘리고 전문성을 갖춘 사람을 추천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