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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약칭 청탁금지법)이 이달 28일 시행 1년을 맞는다.
이 법은 공무원과 학교 직원, 언론인 등 공적 업무 종사자가 직무 관련성과 무관하게 1회에 100만원, 1년에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는 것을 금지한 것이 핵심이다. 공직자 등이 원활한 직무 수행·사교·의례 등을 위해 제공받을 수 있는 음식물·선물·경조사비 금액도 각각 3·5·10만원으로 제한했다.
청렴 문화 확산이라는 법 취지에도 불구하고 내수 소비 위축 등 경제에 미치는 부작용이 크리라는 걱정이 법 시행 당시부터 많았다. 적용 대상이 너무 광범해서다. 시행 1년이 지난 지금도 그 영향을 평가하는 시각은 엇갈린다. 정부는 연내에 개선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소비·서비스업 생산 등 경제지표 영향↓
일단 거시 경제 지표에는 뚜렷한 여파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다.
2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분기(4~6월) 국내 도·소매 및 음식·숙박업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1분기(1~3월)보다 0.4% 늘었다. 도매 및 소매업이 0.4%, 음식업 및 숙박업이 0.3% 각각 증가했다. 이 지표는 청탁금지법이 시행에 들어간 작년 4분기(10~12월)에도 전기보다 0.7% 늘며 증가 폭이 확대됐다.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등으로 소비 심리가 꺾인 올해 1분기 -1.1%를 기록하며 큰 폭으로 뒷걸음질했다가 다시 반등한 것이다.
민간 소비 자체도 작년 4분기 0.2%에서 올해 1분기 0.4%, 2분기 1% 등으로 전기 대비 증가율이 높아지는 추세다.
이 기관의 ‘서비스업 동향조사’를 보면 국내 음식점 및 주점업 판매액(물가 상승분을 제외한 불변 금액 기준)은 청탁금지법 시행 직후 크게 줄다가 최근 들어 감소세가 주춤하고 있다.
음식점·주점업 생산 증감률이 작년 8월 1.3%(이하 전년 동월 대비)에서 9월 -1.8%로 마이너스 전환한 이후 올해 1월에는 -5.8%까지 내려갔다가 지난 7월에는 -3.6%로 감소 폭이 둔화한 것이다. 손은락 통계청 서비스업동향과장은 “법 시행 초기에는 심리적인 위축으로 모임을 자제하는 등 음식점·주점 판매에 영향을 많이 미쳤지만, 지금은 많이 회복된 것 같다”고 말했다.
신승철 한국은행 국민소득총괄팀장은 “올해 2분기에는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경제 보복이 본격화했지만, 미세먼지·신제품 출시 등으로 가전제품이 많이 팔리고, 민간 소비 심리도 개선되는 등 도·소매업에 영향을 미칠 요인이 많았다”면서 “지표가 세분돼 있지 않아 이것만 보고 청탁금지법 영향이 크지 않았다고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통계청 주점업 통계의 경우 일반 주점이 아닌 룸살롱·단란주점 등 은밀한 접대가 많이 이뤄지는 업종은 조사 대상이 아니어서 정확한 영향을 파악하기 어려운 한계도 있다.
농가·외식업체 등 일부 업종은 ‘울상’
농가나 외식업 분야 자영업자 등은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인해 어려움이 커진 것이 현실이라고 호소한다. 경제 지표에는 뚜렷한 영향이 드러나지 않더라도 일부 업종이 피해를 본 것은 분명하다는 이야기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올해 설 명절 전 4주간 백화점 3개사와 대형마트 3사, 농협하나로마트의 국내산 설 농·축산물 선물 세트 판매액이 작년 설보다 무려 25.8% 줄었다고 밝혔다. 국내산 소고기와 과일 판매액이 각각 24.4%, 31% 감소했다.
이 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청탁금지법 시행 후 국내 도매시장에서의 화훼류 거래 금액은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4% 줄어들었다. 특히 선물용으로 주로 사용하는 난류 가격과 거래가 급감하며 난을 포함한 분화류 거래 금액이 18.5%나 쪼그라들었다. 가뜩이나 판매 부진을 겪던 화훼 농가에 청탁금지법이 추가 악재가 됐다는 것이다.
다만 정반대의 설문 조사 결과도 있다. 정확성 검증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임동균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가 지난 20일 한국사회학회 학술 대회에서 공개한 패널 조사 보고서를 보면 자영업자의 70%는 “청탁금지법 시행에도 수입에 별 차이가 없다”고 답했다. ‘약간 감소했다’가 18.89%로 뒤를 이었다. ‘크게 감소했다’와 ‘매우 크게 감소했다’는 각각 8.89%, 2.22%에 그쳤다. 임 교수는 자영업자 90명에게 청탁금지법 영향을 물었다.
골프장 회원권 가격 되레 올라…최순실 게이트에 法관심↓
일부 업종을 제외하면 청탁금지법 영향이 뚜렷지 않은 이유를 ‘솜방망이 처벌’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법을 어겨도 특별한 제재가 가해지지 않아 실효성이 낮아졌다는 것이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전국 회원제 골프장 120곳의 회원권 평균 가격은 청탁금지법 시행 직전인 작년 9월 1억 965만원에서 올해 8월 1억 1091만원으로 되레 올랐다. 접대 골프 감소로 골프장 회원권 가격도 급락하리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던 것이다.
임동균 교수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35.19%가 청탁금지법이 잘 지켜지지 않았던 이유로 “처벌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지 않아서”를 꼽았다. 이 응답 비율은 법 시행 직후인 작년 말 1차 조사에서는 27.62%에 불과했다. 청탁금지법 도입을 강력히 추진했던 박근혜 정부의 명분이 ‘최순실 게이트’라는 고위 공직자 다수가 엮인 초대형 비리로 곤두박질하면서 이 법의 역할과 중요성, 사회적 관심 등이 낮아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지난달 말까지 111명이 법 위반으로 수사 대상이 됐다. 이중 재판에 넘겨진 사람은 7명뿐이다. 3명이 구속됐고, 불구속 기소 또는 벌금형으로 약식 기소된 사람이 각 2명이었다.
文정부 “청탁금지법 보완 방안 마련”
문재인 정부는 청탁금지법 보완 검토에 착수한 상태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19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청탁금지법이 공직 투명화 등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완해야 할 사항은 없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하고 검토할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도 20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소상공인·중소 자영업자 지원 대책’ 당정 협의 후 브리핑에서 “청탁금지법 시행에 따라 특정 산업 분야가 굉장히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며 “그런 타격에 대한 경제·사회적 영향을 분석해 연말까지 보완 방안 마련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무총리실 산하 국책 연구기관인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한국행정연구원에 맡긴 ‘청탁금지법 시행의 경제 영향 분석’ 연구 용역을 오는 12월 초 이전 완료할 계획이다. 이 법 담당 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는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보완 방안 마련 작업에 착수한다.
구체적으로 현재 3·5·10만원인 식사·선물·경조사비 상한액을 손보는 법 시행령 개정이 추진되리라는 관측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