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in][4th Homo Creditus]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 등록 2011-08-17 오전 8:09:56

    수정 2011-08-17 오전 8:09:56

마켓in | 이 기사는 08월 17일 07시 39분 프리미엄 Market & Company 정보서비스 `마켓in`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이데일리 임명규 기자] "내 기억이 `내가 그것을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 자존심은 `내가 그것을 했을 리가 없다`고 말하며 요지부동이다. 결국 기억이 자존심에 굴복한다."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남긴 명언이다. 심리학에서는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 개념으로도 설명한다. 자신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심리를 유식하게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2008년 초 세간을 뜨겁게 달군 국세청장 뇌물 스캔들에서 재판부가 이 문장을 사용해 진실 공방의 종지부를 찍었다. 당시 전군표 前 국세청장은 눈물로 호소하며 부하 직원한테 금품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막강 권력을 지닌 국세청의 수장이었던 사람이 닭똥같은 눈물까지 흘리면서 억울하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은 그의 진정성에 적잖은 동정표를 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법원은 뇌물수수 당시 화면이 찍힌 CCTV와 현장검증, 부하 직원과의 대질심문까지 벌이면서 그가 뇌물을 받은 사실을 밝혀내고 중형을 선고했다. 그는 전 국민을 상대로 아카데미 주연상급 거짓 연기를 선보인 꼴이 됐고, 본인은 물론 조직의 이미지에도 돌이킬 수 없는 굴욕을 안겼다.

그의 눈물 연기에 대한 재판부의 해석은 노골적이고도 담백했다. 재판부는 "오랜 공직생활을 한 전 전(前) 청장이 금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난 것을 못 받아들여 자기방어기제를 발동해 혐의를 부인하고 자신의 잘못을 제3자에게 떠넘기는 방법을 택했을 것"이라며 그를 인지부조화 상태로 규정했다.

시장에서도 자존심이 기억을 이기는 인지부조화가 만연하다. 반칙과 거짓말은 처음에만 불편하고 어려울 뿐, 두 번째부터는 두려움이 점점 느껴지지 않는다. 기업이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다가 시장과의 약속을 저버리면 불신이 쌓이고, 또 다른 불신을 낳는다.

최근 하이닉스반도체(000660) 인수전에 SK와 STX가 뛰어든 점을 두고 시장의 눈초리는 날카로워졌다. 이미 주식시장에서 SK텔레콤(017670)STX(011810)의 주가는 하이닉스 인수 의향을 밝힌 이후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무디스와 S&P 등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SK텔레콤의 재무부담이 커져 신용도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나마 현금 동원력이 우수한 SK텔레콤에 반해 STX에 대한 크레딧 시장의 평가는 참혹하다. 시장 참여자들은 "현재 STX의 재무 여건을 감안하면 다른 기업을 살 때가 아니라 스스로 재무구조 개선에 더욱 힘써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STX가 덩치 큰 하이닉스를 인수할 만큼 자금이 넉넉하지도 못 할뿐더러, 시너지 효과도 탐탁지 않다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시장과의 약속을 또 어긴다는 점 때문에 시선이 차갑다. STX는 불과 2년 전에 재무구조 안정화를 위해 무리한 인수합병(M&A)을 하지 않겠다고 단언했다가 이후 현대종합상사(011760)대우건설(047040), 대한조선 인수를 추진해 시장의 뭇매를 맞은 경험이 있다. 또 지난해 해외 기업공개(IPO)를 통해 1조원의 자금을 조달한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4분의 1에 그쳐 크레딧 시장의 인식은 더욱 악화됐다.

시장에선 기업의 연이은 거짓말에 아우성치고 있는데 정작 강덕수 회장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기업의 오너가 시장과의 소통을 소홀히 할수록 불신은 커져가고 수명은 단축될 수밖에 없다. 시장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기업의 자존심이 기억을 지워버린 경지에 이른다면 시장도 등을 돌려버리는 중형을 내릴 수 있다. 신뢰에 무뎌진 기업과 분노 가득한 시장의 한판승부가 어떤 결말을 맺을지 지켜볼 일이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제4호 마켓in`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제4호 마켓in은 2011년 8월1일자로 발간됐습니다. 책자가 필요하신 분은 문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의 : 02-3772-0381, bond@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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