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됐거든요!","헉! 갑자기 우리딸 왜 이래"

빨라진 사춘기… 아이들이 변했다
  • 등록 2006-08-19 오후 2:47:22

    수정 2006-08-21 오전 8:11:38

[조선일보 제공] 초등학교 5학년 딸을 둔 안지혜씨는 석 달 전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가 아프다. “아이가 친구들은 모두 휴대폰을 갖고 있다고 해서 사 줬어요. 요금은 자동이체를 시켜두었는데, 어느 날 통장을 정리해 보니 아이의 휴대폰 요금이 한 달에 20만원이 넘게 나온 거예요. 알고 보니 그게 모두 문자와 게임비용이더군요. 당장 휴대폰을 압수하고 따끔하게 혼내려 했는데, 아이는 ‘됐거든요!’라고 한마디 하더니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휴대폰 요금이 많이 나온 것보다 아이의 반응에 더욱 놀랐다는 안씨. 예전에는 꾸중을 하면 고개 숙이고 반성하던 아이가 반항적으로 변한 것이 혹시 ‘사춘기 아닌가?’ 하는 생각에 제대로 혼내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중이다. 아이 아빠에게 대신 야단 좀 치라고 얘기했지만 아빠 역시 전과 달라진 딸이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중학교 2학년 아들을 둔 김준호씨는 요즘 부인과 아들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눈다. 그의 아들은 동네에서 알아주는 모범생이지만,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부터 부쩍 외모 문제로 부모와 마찰을 빚는다. 특히 학교의 규칙대로 뒷머리를 일자로 자르는 걸 한사코 거부하며 머리를 기르려고 하는 아들의 마음을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아들의 말에 따르면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머리를 자르면 친구들이 ‘귀두머리’라고 놀린다는 것. 대화를 시도하려고 하면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자신과 비슷한 체격으로 자란 아들에게 이제는 회초리를 드는 것도 무리라는 생각에 새로운 방법을 모색 중이다.

▲ 사춘기 자녀의 방황에 부모가 권위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명히 설명하고 납득시키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필요하다.

앞의 두 사례는 사춘기에 접어든 자녀를 둔 가정의 일반적인 고민거리를 보여준다. 그러나 사춘기 자녀를 둔 가정은 보다 심한 ‘가족의 전쟁’을 치르기도 한다. 가정경영연구소 강학중 소장은 “사춘기에 일어나는 가족 갈등은 그 이전의 관계에 따라 양상이 크게 달라진다”고 단언한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가까웠다면 사춘기의 반항은 성장통처럼 일과성으로 지나가게 마련입니다. 그런 부모에게는 ‘여유를 갖고 기다리라’고 조언하죠. 가끔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하는 자녀가 부모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는 절대로 갑자기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이가 가정폭력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거나 폭력적인 언사에 시달렸거나, 정서적인 불만을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태일 때 폭발하게 되는 거죠.”

사춘기가 빨라졌다, 왜?

사춘기가 빨라진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다. 영양상태가 좋아 아이들의 발육이 빨라졌고, 스트레스와 자극이 과거에 비해 늘어난 것은 사실. 환경이 불안해지면 유전인자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기능을 일찍 발현한다는 설도 있고, 당분과 패스트푸드 섭취가 늘다 보니 비만아동이 늘면서 성호르몬의 분비가 빨라져 사춘기가 일찍 온다는 주장도 있다.

무엇보다 가장 설득력 있는 원인은 매스컴, 인터넷 등에서 마주치게 되는 성 정보의 범람이다. 미국의 미디어 사회학자인 포스트맨에 따르면 “과거에는 성인만 볼 수 있도록 비밀을 유지하기 쉬웠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는 것. 문자가 문화의 주류를 이루었을 때는 책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있지 않으면 정보를 손에 넣을 수 없었다. 그러나 텔레비전은 정보를 비주얼로 전달해 모든 이가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만들었다. 성적인 것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갖게 되면 사춘기가 빨리 온다고 하는데, 비주얼한 문화가 지배적인 곳에서는 아이와 어른의 경계가 없어진다. 그것은 곧 성인 간에 공유하던 비밀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요즘처럼 폭력이나 섹스에 무방비로 노출된 사회에서 성인과 아동, 청소년 간의 경계는 더욱 불분명해진다.

▲ 자녀와의 갈등을 피하려면 평소 자녀와 대화하는 시간을 자주 갖는 게 중요하다.

서강대학교 사회학과 전상진 교수는 빨라진 사춘기에 대해 조금 다른 시각에서 분석을 시도한다. “아이들의 성인화가 빨라진 것은 사실이지만, 성인 역시 아동 같은 특징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고도 볼 수 있다”는 것. 그에 따르면 아이들은 전보다 빨리 성인이 되며 어른들이 여전히 어린이로 남아 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셈이다. 전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의 사춘기가 빨리 와서 ‘아이가 변한 만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가?’에 대해 부모들은 신경 쓰지만, 반대로 부모 같지 않은 사람이 부모가 되는 경우도 흔합니다. 요즘 성인은 성인에게 요구되는 기준에 맞춰 행동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결국 사춘기 아이를 둔 가족의 문제는 아이들이 변해서라기보다 부모가 부모답지 못해 생길 수도 있죠. 그런 의미에서 부모가 되기 위한 교육이 필요합니다.”

강 소장은 요즘 청소년의 특징을 살피는 것이 사춘기 자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부모 세대는 부모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으나, 당당한 표현력을 갖추도록 교육 받은 요즘 청소년은 자기 할 말은 반드시 하는 게 특징이죠. 또한 청소년 인권에 대한 교육을 받아서인지 아무리 부모라도 자식을 때리면 신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부분을 부모들이 가장 당황스러워 하죠.”

부모의 슬기로운 대처 요령

지금은 과거처럼 위계질서에 의해 일이 정리되지 않는 시대다. ‘소프트 매니지먼트’라는 단어가 능력 있는 상사의 특징으로 자리 잡고 ‘무조건 복종하라’는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리더십이 사람의 특성보다는 규율이나 원칙, 역할 자체에서 규정되었지만 요즘은 역할이라는 것 자체를 유지하는 원칙이 불분명해지고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리더십이나 카리스마가 더 중요해졌다.

전 교수는 이런 사회적 변화가 가족 내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설명한다. “과거에는 아이에게 ‘내가 네 부모다’라는 권위를 내세우는 것이 문제 해결의 열쇠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이에게 무엇이 옳다는 걸 납득시키고 설명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렇지 않고 언어적·심리적·물리적인 폭력, 금전적인 억압 등을 이용하면 갈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 가끔 '아이들의 언어'를 이용해 자녀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부모·자식 간의 벽을 허무는 좋은 방법이다.

부모 스스로는 본인의 원칙이 변치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착각일 뿐이며 본인의 원칙이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이 그때그때 생각하는 걸 강요하면 트러블은 더욱 커진다는 것. 그러므로 부모이기 때문에 요구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자신이 믿고 있는 바를 누군가에게 강요하는 것은 더 이상 통하지 않으며, 아이들을 가족의 한 성원이자 파트너로 인식해야 트러블을 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휴대폰을 많이 사용하는 아이에게 휴대폰을 빼앗고 사용을 금지시키면 아이의 반항이 거세지지만, 가계부를 펼치고 수입 대 통신비 비율을 설득하며 동의를 얻는 노력은 효과적이라는 것.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사춘기 자녀와의 공생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 생활에서는 문제 해결을 위한 평등한 커뮤니케이션 노력이 확산되고 있는 반면, 가족 내에서는 이러한 노력이 본격적으로 시도되지 않고 있다”는 게 전 교수의 ‘가족의 전쟁’을 바라보는 진단이다.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의 자세에 대해 강 소장은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첫째, 믿고 기다려라. 사춘기는 누구나 겪는 일시적인 통과의례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의 혼란스러운 상태, 심리적으로 독립하려는 상태가 엄마 아빠 눈에는 반항으로 보이는 것이므로 지나치게 자질구레한 일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게 제1원칙이다. 특히 아이들이 요청하기 전에 먼저 나서서 결정하거나 고민하는 것은 금물. 가장 대표적인 갈등 요소인 옷차림에 대해서도 간섭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두는 게 좋다. 사춘기 아이는 성인이 아니므로 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시기. 언제든 도움을 요청하면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사람이 부모라는 사실을 아이가 알 수 있도록 한다.

둘째, 귀 기울여 들어라. 대화를 하고 싶다면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보다 아이들의 관심사에 대해 물어라. 부모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이에겐 간섭이나 잔소리로 들릴 뿐이다.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느낌을 주면 아이들이 달라진다. 함께 식사하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악방송을 함께 보며 무엇 때문에 그 음악이나 그 프로그램을 좋아하는지 함께 보고 같은 눈높이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과 어떤 문제에 대해 상의하려 하면 좋아한다. 때론 아이들이 기대보다 훨씬 성숙한 시각이나 생각을 갖고 있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가벼운 부부싸움을 했다면 아이에게 “누가 잘못했지, 넌 어떻게 생각하니?” 하고 물어볼 수도 있다. 단, 이때는 아이들의 연령에 맞게 상의할 수 있는 문제를 던지도록 주의해야 한다.

셋째, 부모도 공부하라. 아이를 낳고 키운다고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춘기 아이들의 특성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먼저 키워본 선배 부모들의 이야기는 큰 도움이 된다.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는 학부모 모임도 도움이 되며 인터넷 상담을 이용해도 된다. 아이의 사춘기를 바라보는 시선은 긍정적이어야 한다. 이 시기를 잘 넘기면 감정적으로 쌓였던 것을 털어낼 수 있으며, 이때의 경험은 더 나은 성장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시키는 대로 다 하는 자녀는 쉽지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반항 없이 순종적으로 크는 게 더 위험하다는 걸 잊지 말자.

넷째, 아이와 논쟁하지 말라. 대화를 시도하되 논쟁은 하지 말라. 부모와 자식 간의 경계가 무너지기 쉽다. 가끔 아이 말이 논리적으로 맞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아이의 말투는 부모 귀에 불손하게 들리게 마련. 이것이 종종 언쟁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또한 아이를 격려하거나 칭찬하는 것은 좋지만, 아이와의 관계 증진을 기대하며 아부하는 것은 금물. 아이는 느낌으로 이를 구분한다. 결국 부모에 대한 경외심을 줄어들게 할 뿐이다.
다섯째, 아이들의 언어를 이용하라. 혼을 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감정에 치우쳐 아이를 혼냈다면 아이에게 사과할 수도 있다.

직접 이야기하는 게 힘들다면, 아이들의 언어인 문자 메시지, 이메일 등을 이용한다. 예를 들어 아빠와 아이가 다퉈서 아빠가 혼을 냈을 때, 엄마가 대신 사과를 할 수도 있다. “네가 잘못했지만 아빠가 손찌검한 건 아빠 잘못이다. 많이 아프지? 아빠도 잠 못 주무시고 미안해하더라”라는 내용으로 이메일이나 문자를 보낸다면 아이의 마음도 누그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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