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한 건 진료비로 사상 최대인 18억8100만원이 나왔다.
서울 경희의료원은 혈우병을 앓고 있는 배광현(37)씨의 관절 출혈을 멎게 하는 데 들어간 97일치 진료비로 본인 부담금 1000만원을 제외한 18억7100만원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청구했다고 밝혔다. 이는 2004년 같은 병원에서 역시 혈우병 환자 진료비로 청구했던 12억8000만원보다 6억여원이 더 많은 우리나라 의료 사상 최고 액수다.
혈우병은 혈액을 응고시키는 인자가 부족해 한번 출혈이 생기면 좀처럼 피가 멈추지 않는 선천성 질환. 일단 몸 안에서 출혈이 시작되면 부족한 혈액 응고 인자를 투여해야 하는데 하루 약값만 수천만원이 들 정도로 비싸다. 배씨도 전체 진료비 18억8100만원 중 18억5000여만원이 약값이다.
배씨는 지난해 8월 20일 발목, 팔꿈치 등 여러 관절에서 출혈이 생겨 응급환자로 경희의료원에 입원했다. 처음 2주 동안은 ‘훼이바’(1회 투여시 420만원)로 지혈이 되는 듯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출혈이 재발하고, 출혈되는 관절 부위도 점점 늘어나 위험을 무릅쓰고 출혈 부위 염증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수술 후에도 출혈이 계속돼 결국 ‘노보세븐’을 투여해야만 했다. 주사제 노보세븐은 몸무게에 따라 투여량이 결정되는데 배씨의 1회 투여 비용은 640만원이었다. 2시간 간격으로 계속 주사를 맞아야 하는 위급한 상황일 때는 하루 약값만 8000만원에 이르렀다. 배씨는 11월 24일에야 퇴원했다.
의료원측은 그러나 치료비 청구 금액이 너무 높다는 이유로 심사평가원 심사에서 지급액이 삭감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경희의료원이 지난해 청구한 혈우병 환자 치료비도 12억8000만원 중 ‘과잉진료’ 등을 이유로 2억6000만원이 삭감됐고, 2001∼2002년에 진료한 94건에 대해서도 청구한 진료비의 평균 20% 이상이 삭감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경희의료원은 수술받은 배씨의 발목과 팔꿈치 관절의 재활 치료가 필요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배씨를 퇴원시켰고, 서울 다른 대학병원에서도 진료를 거부해 배씨는 현재 거동이 불편한 상태다.
배씨 주치의 윤휘중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최선을 다해 치료를 해도 부당하게 진료비가 삭감되다 보니 병원이 환자를 받지 않거나, 의사들이 소극적으로 진료하게 된다”며 “혈우병은 가능한 한 초기에 충분히 치료해 출혈 부위가 완전히 아물게 해야 하는데, 이 같은 사정 때문에 결과적으로 치료비가 더 들고, 환자도 더 큰 후유증으로 고생하게 된다”고 말했다.
윤교수는 또 "건강보험에 큰 타격을 입히지 않으면서 혈우병을 제대로 치료하려면 별도의 재정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