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프리즘]예술인권리보장법 '유명무실'

박주희 제이 대표변호사
  • 등록 2024-01-15 오전 6:15:00

    수정 2024-01-15 오전 6:15:00

2022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예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예술인 개인이 예술활동으로 벌어들인 연평균 수입은 755만원이었다. K컬처, K팝,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문화강국’으로 자리매김한 성과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수준이다. 저 수치에는 세계적인 흥행으로 천문학적 수입을 벌어들인 소수의 예술인들의 수입도 포함돼 있으니 사실상 대다수의 예술인들의 현실은 더욱 열악하다고 보면 된다.

서글픈 양극화와 불안정한 수입보다 예술인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약자인 그들의 상황을 악용하는 예술계의 환경이다. 권력관계에서 이뤄지는 성폭력, 성희롱부터 부당한 대우와 불공정한 관행이 만연해 있지만 그저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예술인들을 위해 국가 차원의 보호와 개선 노력이 절실하다.

다행히도 예술계의 부당한 창작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2022년 9월부터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시행되고 있다. 지난해 1월에는 10년 이상 예술분야 경력이 있는 12명의 위원으로 이뤄진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가 발족돼 올해 2년차를 맞았다. 필자도 문화예술변호사로서 위원회의 위원으로 위촉돼 미약하나마 예술 환경이 개선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위원회는 분과위원회까지 포함하면 매달 4번 이상 회의를 개최하고, 하나의 안건을 두고도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어느 사안도 허투루 넘어가지 않는다. 그 결과 지난 7월 문체부장관이 ‘검정고무신’의 작가 고 이우영 씨에게 미분배된 수익을 출판사가 지급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리기도 했고, 현재까지 31건의 시정명령과 20건의 분쟁조정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법 시행 3년차, 아직 갈 길은 멀게만 느껴진다. 예술인권리보장법이 가진 한계로 인해 실효성 있게 이행을 강제하거나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신고된 사건에서 예술인에 대한 불공정행위나 성희롱이 있었다고 위원회가 심의,의결하면 문체부장관은 시정명령을 내리도록 돼 있는데, 문제는 현행법상 문체부장관의 시정명령을 따르지 않더라도 위반자에 대한 제재는 과태료 500만원 부과에 그친다는 것이다. 행정처분의 위엄과 실효성은 이행하지 않았을 때 입게 될 불이익에 비례하는 것일텐데 너무나 미약한 제재 앞에서 당사자들이 코웃음을 치지는 않을지 무력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실제 1월 현재까지 예술인신문고에 접수된 사건은 총 221건이지만 처리 건수는 100건에 그친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말처럼 권리구제는 빠른 처리가 생명일텐데 1년간 처리한 사건이 접수된 사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위원회도 담당 팀도 그 누구 하나 게을리 하지 않았다. 사건이 접수되면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신고인과 피신고인의 주장과 의견을 듣고, 관련 서류와 증거들을 조사하는 절차가 필수적이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들을 직접 대면해 진술을 듣기도 하고, 때론 참고인의 진술까지 듣는 등 많은 시간과 노동이 소요된다. 그러나 현재 문체부 담당 팀의 조사 인력이 3명에 불과해 결국 물리적 한계로 절차 진행이 늦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첫 술에 배부를리 없고 앞으로 제반 여건도 개선될 것이라 믿는다. 다만 그 전제는 법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다. 법을 운영하는 일도 나무를 키우는 일처럼 끊임없이 물도 주고, 곁가지도 잘라주며 애정과 관심을 쏟으며 가꿔나가야 한다. 단순히 입법으로 명분만 쌓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부분은 끊임없이 개정하고, 다방면의 지원과 관심으로 법이 우리사회에서 본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돌보아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4 문화 예술인 신년인사회에서 문화예술계를 힘껏 지원하겠다고 공언했다. 수입의 양극화만큼이나 지원의 양극화에 소외된 예술인이 또 다시 눈물짓지 않도록 예술인권리보장법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기대해본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완벽 몸매' 화사의 유혹
  • 바이든, 아기를 '왕~'
  • 벤틀리의 귀환
  • 방부제 미모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