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축소(디레버리징)를 둘러싼 금융당국의 정책 방향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이 이번주 들어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를 일제히 내리고 있다. 국민 신한 하나 농협 우리은행이 지난 주말 대비 0.1~0.18%포인트 내렸으며 인터넷은행인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도 0.13~0.148%포인트 낮췄다. 이에 따라 위험수위를 넘고 있는 가계부채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은행들이 주담대 금리 인하에 나선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은행 종노릇’ 발언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소상공인들이 죽도록 일해 번 돈을 대출 원리금을 갚느라 은행에 고스란히 갖다 바치고 있다”면서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고 은행의 ‘이자 장사’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발언이 나오자 금융당국은 상생금융 카드를 앞세워 대출금리 인하 압박에 나섰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줄여줄 수 있는 ‘특단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은행들이 어떤 혁신을 했길래 60조원의 이자 이익을 거둘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가세했다.
금융당국의 은행권에 대한 대출금리 인하 압박은 지금까지의 정책 기조와는 배치된다. 금융당국은 지난 9월부터 주담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강화하면서 대출금리 인상을 유도하는 정책을 폈다. 은행권 가계대출이 5개월 연속 증가하며 지난 8월에는 25개월 만에 최대 증가폭(6조 9000억원)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 3월 말 현재 104.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중 압도적 1위다. 과도한 부채는 가계의 소비 여력을 고갈시켜 경제성장률을 떨어트리고 금융 불균형을 심화시켜 한국경제를 위협하는 시한폭탄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은행들이 과도한 이자 장사로 폭리를 취하는 것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도 권고했듯이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난 가계부채 문제는 더 방치할 수 없는 단계까지 왔다. 상생금융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목전에 닥친 가계부채 위기를 극복하는 데 노력을 집중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