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법칙은 어찌 보면 평등하지 않다. 자연의 본성이 투영된 인간의 삶에서도 절대적인 평등을 구현하기는 그래서 쉽지 않다. 누구는 더 가지고, 누구는 더 세기도 하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런 현실적 불평등을 수용하는 것은 그래도 열심히 하면 그만한 보상이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이것이 깨지면 사회 구성원의 삶의 근본이 흔들린다. 분노의 원천이 여기에 있다.
이번 선거관리위원회의 특혜채용 의혹은 이러한 이유에서 국민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고 오히려 증폭된다고 해도 과하지 않다. 무엇보다 공정해야 할 선거관리 조직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선거는 대의민주주의에서 주권자인 국민이 통치권을 위탁할 국가기관을 선택하는 유일한 도구이다. 그래서 선관위라는 헌법기관을 만들고 여기에 선거사무만 떼어내어 그 권한을 부여했다.
특혜채용을 계기로 선관위 내부를 들여다본 감사원의 감사 결과는 참 난감하다. 선관위 직원들이 부정하게 받은 돈으로 공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무보수여야 할 중앙선관위 비상임위원들에게 법적 근거도 없이 매달 수백만원의 수당을 지급했다. 헌법에서는 호선으로 선관위원장을 선출하게 했지만, 각급 선거관리위원장을 대법관과 법관이 그 신분만을 이유로 그냥 맡는 관행이 형성됐다.
재판만으로도 일이 산더미인 법관들이 선거관리에 큰 관심을 가질 리 없다. 그렇게 법원의 권위는 호가호위하면서 정작 선관위원장인 대법관이나 법관의 관리 감독은 피하고 있었다. 선거사무의 독립을 핑계로 특권의 독립만 강조했다. 이런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해 왔다면 그 조직이 부패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울 수 있다.
권익위가 각급 선관위에 대한 불법 채용 전수조사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었다. 관련 자료 제출 및 동의는 아직 더디기만 하다. 권익위 조사관들은 마치 구걸이나 하듯이 자료를 얻어내고 있는 모양이다. 강제조사권이 없으니 그렇게 해서라도 실체를 파악하고자 하는 권익위 조사관들의 노력이 때론 짠하다. 국민의 명령 앞에 특권을 주장할 수 있는 국가기관은 없다. 지금이라도 선관위는 철저하게 외부기관의 조사에 협력하고, 국민이 보기에 충분하다고 느낄 정도로 내부 자정을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선관위를 지키고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