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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후 3시께 전세 사기 피해자 A씨(31·여)가 숨진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 B아파트의 출입구 앞. 이곳에서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한 세입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같이 말하며 정부에 대한 원망을 쏟아냈다.
이들은 속칭 ‘건축왕’으로 불리는 B아파트 건물주 남모씨(61)의 사기 피해를 입고 경매 절차를 앞두고 있다. 최근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된 남씨는 재판 중이다. 1개 동짜리인 B아파트는 2017년부터 입주가 시작됐고 전체 36가구로 구성됐다. 현재 전 세대가 세입자이다.
피해자 극단 선택에 경매절차…불안 커져
B아파트 출입구 앞에는 입주민회가 A씨를 추모하며 가져다 놓은 화환이 있었다. 입주민회는 유리로 된 출입문에 ‘전세사기 피해아파트’라고 적힌 현수막을 붙여 행인에게 경각심을 알렸다.
B아파트 곳곳에는 ‘전세사기 수사 중’, ‘계약주의’ 등이 적힌 입주민회의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숨진 A씨의 12층 집 현관문에는 ‘힘들어했을 당신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는 내용 등이 적혀진 추모 메모지가 있고 문 앞 바닥에는 국화가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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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김 부위원장도 전세 사기 피해자이다. 그는 2021년 9월 전세 보증금 9000만원을 내고 입주했고 남씨의 대출 빚 때문에 앞으로 경매절차가 완료되면 쫓겨날 상황이다. 김 부위원장은 “현재 부동산법은 약자인 세입자에게 불리하고 임대업자에게는 유리하게 돼 있다”며 “이러니 임대업자들이 법을 악용해 사기를 치고 세입자의 보증금을 떼먹을 수 있는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를 알면서도 고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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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아파트 세입자인 박모씨(64)는 “전세 계약 만료 시점인 2021년에 집주인이 보증금을 7500만원에서 8500만원으로 올려 재계약해서 최우선변제금도 받지 못한다”며 “작년 3월 임의경매 대상이 됐고 쫓겨나면 새로운 집을 어떻게 마련할지 걱정이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 집으로 이사 올 때 부동산중개인이 부동산공제증서를 주면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모두 거짓말이었다”며 “결국 집주인의 근저당(담보액 1억5500만원) 문제가 터져 보증금을 한 푼도 못받게 됐고 고시원이나 월셋방을 알아봐야 할 처지이다”고 토로했다.
박씨 옆에 있던 세입자 조모씨(40대·여)는 “우리는 집주인과 한패처럼 보이는 부동산중개인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다”며 “부동산중개인이 전세금 대출 기관으로 소개해준 은행도 사기꾼과 한패인 것 같다”고 비난했다. 조씨는 “정부는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을 위해 경매절차를 당장 중단하고 소득 제한 없이 저리대출을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