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인경 기자]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막론하고 국내 기업들이 모두 현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 기업들의 은행 대출이 최고치에 이르렀고 알짜배기 토지나 건물을 파는 경우도 이어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가 가라앉으며 사회적 거리 두기는 해제됐지만 코로나발 경기침체는 사라지지 않았다는 게 기업들의 판단이다.
5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 4월 기준 대기업 대출은 총 88조5074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72조792억원에 불과했던 대기업 대출은 올들어 1월 73조8190억원으로 늘었다. 이어 74조6073억원, 82조7022억원으로 불어나더니 이제 90조원 바로 턱 밑까지 올라온 셈이다.
| 5대 시중은행 대기업 대출 잔액 추이(단위: 억원, 출처: 각사) |
|
중소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4월 말 중소기업(소호 포함) 대출은 463조9292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말 만해도 442조4247억원에 불과했지만 1월 447조2475억원으로 증가했고 이어 2월과 3월에도 오름세를 타며 450조1293억원, 455조4912억원으로 계속 상승하고 있다.
| 5대 시중은행 중소기업(소호 포함) 대출 잔액 추이(단위:억원, 출처:각 사) |
|
기업들이 대출만 한 것이 아니다. 기업들은 가지고 있던 자산들을 매각하며 실탄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달 이마트는 서울 마곡지구 토지를 8158억원에 매각했다. 이 땅은 이마트가 2013년에 서울주택도시공사로부터 2400억원에 사들인 후 대형쇼핑몰 스타필드를 짓기 위해 공을 들이던 곳이다.
LG전자는 중국 베이징 금싸라기땅인 창안제(長安街)에 위치한 지분 49%를 싱가포르투자청에 팔기로 했다. 이 매각으로 LG는 6688억원 규모의 자금을 수혈할 수 있게 됐다. 대한항공도 최근 제주시 연동의 사원 부지 매각을 체결하며 300억~400억원을 확보했다. 이 땅은 1979년부터 40여년간 대한항공이 보유했던 땅이다. 현대로템 역시 경기도 의왕시의 부지를 878억원을 받고 현대모비스에 팔았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물론 기업들이 보유자산을 매각하는 건 저마다 다른 속사정도 있겠지만 공통된 점은 일단 빚을 갚으려는 목적이든 실탄을 확보하는 목적이든, 현금화를 하려는데 있다”면서 “유동성 확보가 기업들의 첫번째 미션이 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기업들의 대출 역시 신규 투자나 프로젝트를 위한 것 보다는, 인건비나 임대료 등 고정비로 사용하며 혹시나 모를 위험에 대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는 잦아들고 있지만, 실물 경기의 충격은 이제부터라고 우려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불확실성이 여전한 만큼 기업들의 대출 수요 증가 추이가 잦아든다고 해도 당분간 잔액 자체가 크게 줄긴 어려워 보인다”면서 “은행도 늘어나는 대출 추이에 맞춰 리스크 관리에 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