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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배우들이 한창 연기 중인 공연장. 벽난로 위 받침대가 갑자기 떨어지자 배우들이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이내 공연에 집중하지만 이번엔 음향효과가 나오지 않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위스키라고 들고 나온 소품은 빙초산. 예측불허 상황의 연발로 배우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지만 객석에서는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연극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내년 1월 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은 간만에 만나는 ‘순도 100%’ 웃음으로 채운 코미디 연극이다. 2012년 영국에서 초연 당시 관객수 단 4명에 불과했던 공연은 입소문 속에서 2014년 웨스트엔드에 상륙했고 이후 미국 브로드웨이를 비롯해 뉴질랜드·독일·일본·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전 세계 37개국에 수출돼 무대에 오르고 있다. 국내에서는 공연제작사 신시컴퍼니의 라이선스공연으로 지난 11월 2일 초연에 올랐다.
부담 없이 웃으며 볼 수 있는 공연이지만 배우들은 여느 작품보다 더 긴장하며 무대에 오르고 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만난 배우 호산(44)과 김태훈(26)은 “여러 가지 변수가 맞물리며 이뤄지는 공연이라 초반에는 실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호흡이 척척 맞고 있고 관객들의 반응에 더 힘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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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 즉흥극까지…오디션부터 독특”
‘잘못돼 가는 연극’이라는 뜻의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은 콘리대학 극연구회 소속 대학생들이 ‘해버샴 저택 살인사건’이라는 작품을 공연한다는 설정의 극중극 형식을 취하고 있다. 출연진 중 맏형인 호산은 로버트 역, 막내인 김태훈은 맥스 역을 맡고 있다. 극중극인 ‘해버샴 저택 살인사건’에서는 각각 로버트와 세실·아더를 연기한다.
배우들도 창작진의 배우 캐스팅의 의도에 공감했다. 호산은 “영국 창작진도 처음 공연을 준비할 때는 무명에 가까웠다”며 “극이 갖고 있는 재미만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창작진의 의지가 캐스팅에도 반영됐다“고 말했다. 김태훈은 “스타보다 더 뜨거운 열정이 우리 작품에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1주일 동안 4차에 걸친 오디션을 통해 작품에 캐스팅됐다. 100대1의 높은 경쟁률을 자랑한 오디션은 게임과 즉흥극 등 기존 연극 오디션과는 전혀 다른 형식으로 펼쳐졌다. 호산은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30분간 ‘공공칠빵’ 같은 게임을 하는 게 오디션이었다”며 “매우 독특하고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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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살 나이 차이? “서로 자극 주고 받아”
호산은 극작가 겸 연출가 고선웅이 창단한 극공작소 마방진 소속으로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헤다 가블러’,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맘마미아!’ 등에 출연한 중견 배우다. 반면 김태훈은 연극 ‘미안해서 그래’ ‘리어왕’ 등에 출연하며 연기 경력을 막 쌓아가고 있는 신인이다.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무려 열여덟 살. 그러나 두 사람은 “나이 차이를 전혀 느끼지 않는다”며 웃었다. 호산은 “10년 넘게 나이 차이가 나는 배우들과 공연할 기회가 많지 않다”며 “서로 좋은 기분을 주고받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동생처럼 무난하게 어울리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김태훈은 “연기 공부는 물론이고 작품에 임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선배들을 통해 많이 배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연극은 의미를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관객에게는 웃음에 충실한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이 다소 낯선 작품일 수 있다. 반면 공연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은 관객에게는 공연의 매력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호산은 “연극이 때로는 너무 정적이고 깊은 철학에 빠져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며 “그런 점에서 우리 공연은 할아버지, 할머니도 아이들도 함께 웃으며 볼 수 있는 연극적인 재미가 있는 작품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태훈은 “찰리 채플린의 ‘웃지 않은 하루는 헛되이 보낸 하루다’라는 명언처럼 웃음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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