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하녀’ |
|
[이데일리 이정현 기자] △몰아치는 파멸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 마음을 흔든다. 부잣집에 하녀로 들어간 여자 앞에 나타난 남자. 은이(전도연)가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훈(이정재)은 피아노를 연주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7번’이다. 2010년에 개봉한 영화 ‘하녀’에는 관능이 흐른다. 부와 권력 앞에 결국 산산조각난 여자의 이야기다. 피아노는 은이와 훈이를 연결하는 첫 번째 매개다. 연출을 한 임상수 감독은 베토벤으로 폭풍 속에 파멸하는 여자를 암시했다.
△ 폭풍, 베토벤
관능은 고통을 이겨낸 자의 것이다. 베토벤이 서른 줄에 올랐던 1801년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청각은 악화했고 사랑하는 이와는 맺어질 기미가 없었다. 자포자기한 베토벤은 요양하던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유서를 쓰고 눈감으려 했다. 귀머거리가 되어 영원히 음악을 들을 수 없다는 절망. 그것이 베토벤을 악성으로 만들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템페스트’가 부제로 붙은 ‘소나타 17번’도 그중 하나다. 폭풍같은 역동적이고 화려한 선율로 대중에 잘 알려졌다. 귀를 잃어가는 와중에 써낸 베토벤의 역작이다.
△ 김선욱에게 ‘서른’ 이란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베토벤의 폭풍을 연주한다. 내달 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여는 피아노 리사이틀에서다. 짧은 생애를 산 모차르트를 포함해 베토벤과 드뷔시, 브람스 등이 30대 초반에 남긴 곡을 연주한다. 자신과 비슷한 나이 때의 거장이 남긴 명곡을 프로그램에 담은 게 눈에 띈다. 김선욱은 폭풍 같은 20대를 보내고 서른을 맞이해서야 여유를 찾았다고 했다. “피아니스트는 외로운 음악가”라며 “음악으로 나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겠다”고 연주를 앞둔 각오를 남겼다.
| 피아니스트 김선욱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