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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미투’(MeToo) 운동으로 문화예술계에 만연한 성폭력 문제가 수면 위에 떠오른 지 4개월이 지난 가운데 가해자로 지목됐던 이들이 뒤늦게 입장을 밝혔다. 당시 밝히지 못한 진실을 통해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들을 바라보는 문화예술계의 시선을 여전히 싸늘하다.
◇명예훼손 등 강경 대응 나서는 가해자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은 27일 오전 “현재 김태훈 교수의 의혹은 세종대 성폭력 진상조사위원회를 통해 조사가 이뤄졌고 ‘미투’ 고발자는 학교 측의 안내에 따라 조사에 응하며 자료를 제출했다”며 “학교 측으로부터 진상조사결과 징계사유로 판단돼 인사위원회에 안건을 회부한다는 연락을 받았고 우리는 지금까지 학교의 최종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김태훈 교수의 일방적인 주장을 공론화한 점에 대해서도 “명백한 2차 가해”라고 비판했다.
세종대는 7월 중 김태훈 교수에 대한 징계안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맞물려 김태훈 교수는 지난 25일 대리인을 통해 보도자료를 내고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사건을 마치 사실인양 보도한 몇몇 언론사에서 정정보도문을 게재했다”며 ‘미투’ 운동 당시 불거진 성폭행 혐의를 부인했다. 김태훈 교수는 지난 2월 말 ‘미투’ 운동을 통해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제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논란에 휘말렸다. 김태훈 교수 측은 보도자료에서 “해당 언론사가 정정보도문을 통해 ‘폭로글에 대한 사실 확인을 하지 않았고 폭로자의 폭로 내용을 면밀하게 검토하지 못했다’며 잘못을 인정했다”며 피해자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김태훈 교수 대리인은 이에 대해 “세종대에서 징계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대응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잘못된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생각으로 법률대리인을 통해 정정보도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김태훈 교수도 보도자료를 통해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어버렸고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다시피 살고 있다”며 “하나뿐인 딸아이를 생각해 성추행범의 자녀라는 멍에를 남길 수 없어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나섰다”고 주장했다.
김태훈 교수와 조재현 외에 성추행 논란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정직 처분을 받은 황지우 시인, 박재동 화백도 징계에 불복하고 행정소송 등을 준비하고 있다.
◇성폭력 문제 해결 시작도 안 했는데…피해자 위축 우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가인권위원회가 공동으로 구성한 문화예술계 성폭력 특별조사단이 지난 19일 발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문화예술계 종사자 중 40.7%가 성희롱·성폭력을 직접 경험한 적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사람의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전해들은 경우도 54.1%에 달했다. 여성 종사자 중에서는 57.7%가 ‘성희롱·성폭력을 직접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피해를 그냥 참고 넘어갔다는 이들 중 69.5%는 ‘문제 제기를 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노선이 활동가는 “성폭력 가해자 입장에서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피해자를 역고소하는 것은 본인의 무고를 밝히기보다 법적으로 피해자보다 우월한 위치에 서서 법적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기 위해서일 수 있다”며 “가해자가 피해자를 고소했다는 보도를 통해 제3자는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억울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그럴수록 더 많은 피해자들은 정당한 피해호소를 하지 못하고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