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의 눈]막 오른 볼턴의 시대

  • 등록 2018-04-11 오전 5:00:01

    수정 2018-04-11 오전 5:00:01

[뉴욕=이데일리 이준기 특파원] 좌충우돌·안하무인·비이성적. 미국 언론을 비롯한 외신들이 그를 묘사할 때 주로 쓰는 수식어들이다. 마치 엄청난 ‘성격적 결함’ 있는 인물로 특정한다. 9일(현지시간) 미 안보사령탑인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으로 백악관에 처음 출근한 존 볼턴(사진) 이야기다.

왜 그럴까. 흰 콧수염에 안경 낀 깐깐한 영어교사 같은 외모에서 풍기듯 볼턴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부시 정부의 초강경 정책을 이끈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핵심 인물이다.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를 상징하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를 통한 ‘패권’ 야심을 보였던 그는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옛 로마의 격언을 자주 인용할 정도로 ‘강경파 중 강경파’로 불린다. 한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초기 국무차관 입각설이 제기됐으나 워낙 극단적 성격 탓에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조차 완곡히 거절했다는 후문이다. 2003년 이라크 침공의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 은닉이 추후 ‘거짓’ 판명됐지만, 여전히 “합법적 군사행동”이라고 강변하는 모습에서 그의 성격을 유추할 수 있다.

볼턴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로널드 레이건부터 조지 HW 부시(아버지 부시),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등 공화당 대통령 3명의 행정부에서 일해온 볼턴은 아들 부시 시절 국무부 차관·유엔주재 대사를 지내며 당시 햇볕정책을 놓고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자주 충돌했다. 볼턴은 회고록에서 햇볕정책 설계자인 김대중을 비판하며 “몇몇 한국 관료와 외교관은 북한 ‘옹호자’”라고 쓸 정도였다.

그런 그가 이제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 ‘컨트롤타워’인 NSC의 수장이 됐다. 국무부와 국방부, 재무부는 그가 결정하고 수립한 대외정책을 손발이 돼 집행해야 한다. 미 조야 일각에선 아예 볼턴이 ‘전쟁’을 일으킬 것을 기정사실화하며 강한 ‘견제’를 내놓고 있다. 스콧 세이건·앨런 와이너 스탠퍼드대 교수들은 뉴욕타임스(NYT)에 “볼턴의 선제타격론은 ‘국제법상 불법’”이라며 “특히 유엔헌장에서는 이를 ‘침략’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나마 볼턴이 ‘강경파’란 평가를 의식한 듯 “그동안 한 발언은 다 지난 일”이라고 한 건 다행이다.

사실 트럼프가 볼턴을 기용한 배경 중 ‘북한’이 차지하는 포션은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 러시아·섹스 스캔들로 골치를 앓는 트럼프 입장에선 국민의 시선을 돌릴 강력한 외교·안보 정책이 필요했다.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의 시(習) 황제와 러시아의 차르 푸틴을 견제하기 위한 정책 입안자도 절실했다. 파기하길 원하는 이란 핵 합의나 손을 떼고 싶은 시리아 내전 문제도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볼턴’이 떠올랐을지 모른다.

문제는 이달 27일 남북 정상회담이, 늦어도 6월초 어느 날엔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점이다. 청와대는 ‘정의용(국가안보실장)·볼턴’ 채널을 가동할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나마 탄탄했다고 평가받는 ‘정의용· 맥매스터(전 NSC 보좌관)’라인과 같을 수는 없다. 볼턴은 아직 문 대통령을 마뜩잖은 ‘김대중·노무현의 후계자’ 정도로 생각할 공산이 크다. 그의 언행으로 유추한 볼턴의 비핵화 구상은 이렇다. “김정은! 우리가 하자는 대로 하라. 아니면 전쟁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 극단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지 궁금하다. 싫든 좋든 볼턴의 시대는 이제 막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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