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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이 반도체 가격 인상에 불만을 제기해, 중국 당국이 한국 반도체 업체에 의견을 전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반도체업계 관계자들은 답답한 속내를 털어놨다.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는 중국 관영언론의 보도대로 관계자가 소환되거나 공문을 전달받지는 않았지만, 언론을 통해 알려진 만큼 조만간 중국 당국이 조사에 착수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업계는 중국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부서인 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의 시장 개입이라는 점에서 가볍게 보지 않는 분위기다. 더욱이 전방위적으로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을 가하고 있는 중국의 전례없는 ‘반도체가격 트집’에 긴장감이 배가되고 있다.
투털대던 中 고객사들, 결국 ‘정부 동원’
올 들어 본격화된 ‘슈퍼사이클(초호황)’로 국내 반도체업체들은 최대 실적을 올렸지만, 속은 편치 않았다. 거침없이 오르는 D램, 낸드플래시 가격에 고객사들의 불만섞인 푸념이 늘었기 때문이다. 특히 애플의 아이폰, 삼성전자의 갤럭시 시리즈에 밀려 마진이 높지 않은 화웨이, 오포 등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의 불만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공급을 늘려도 수요가 계속 느는 상황이라 반도체 가격 상승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반도체 D램 가격은 지난 11월 3.59달러(DDR4기가비트 기준)이었다. 지난해 6월(1.31달러)과 비교하면 2배 넘게 오른 것. 업계에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모바일 D램의 절반 이상을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에게 공급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D램은 월 단위 내지는 분기 단위로 공급 계약을 맺는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물량을 확보하려는 수요업체들의 요구로 통상 분기 단위로 계약한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D램의 타이트한 수급 상황을 모르고 하는 얘기”라고 말했다. 담합 의혹은 표면적 이유일 뿐, 실상은 D램 가격 상승으로 고전하는 중국내 스마트폰 업체들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빡빡한 수급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대규모 반도체 투자 계획을 밝힌 국내 반도체업체들은 갑작스런 중국 당국의 압박에 난감해 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치킨게임 우려에도 수요를 맞추기 위해 대규모 증설에 나섰는데, 중국 정부가 가격에 손대면 투자 계획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머나먼 반도체 굴기,..의도적 견제 시선도
반도체 굴기(堀起·우뚝 섬)를 선언한 중국 당국이 시간을 벌기 위해 해외 반도체업체들을 견제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중국 반도체업체들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대규모 투자에 나서고 있지만, 기술 개발속도가 더뎌 성과를 보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최근 “향후 3~5년은 중국의 자체 메모리 개발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며 “특허 등 지식재산권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 정부가 자국 시장의 저변을 앞세워 해외 제조사들과 협상에 나설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제 관심은 중국 당국이 실제로 가격 규제에 나설 지 여부로 모아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메모리반도체가 품귀를 빚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정부가 해외 반도체업체들에게 노골적인 압박을 가할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대립각을 세웠던 양국 관계 등을 감안하면 안심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중국 정부이기에 어떻게 번질 지 가늠하기 힘들다”면서 “현재로선 발개위가 실제로 조사에 착수할 지 등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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