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권 신공항 논란의 여진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이번엔 세종시가 천도(遷都)와 국회 분원(分院) 설치 문제로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의 진원으로 떠오를 조짐이다. 수도를 옮기자는 천도론은 남경필 경기지사가 최근 청와대와 국회의 세종시 이전을 주장하고 나선 데 이어 안희정 충남지사를 비롯한 야권이 적극 거들고 나서면서 내년 대선의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이해찬 의원(무소속)도 제20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국회 분원 방안을 대표 발의한 상태다.
남 지사와 안 지사는 천도론 명분으로 정치·경제권력의 기득권 타파 및 지역균형발전 등을 내세우고 있다. 국회 분원론은 천도론의 중간 단계 성격이 짙다. 당장 수도를 옮기기 어려울 것 같으니까 물꼬라도 터놓고 보자는 일종의 내지르기 수법인 셈이다. 행정수도에 대해서는 2004년 당시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이미 제동이 걸린 사안이다.
당시에도 엄청난 논란이 일었고, 지금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질 게 뻔한데도 이런 주장들이 쏟아지는 것은 현재 우리 정치 지형도에서 차지하는 충청권의 비중이 절대적인 탓이다. 1997년 이후 대선에서 충청권에서 패하고도 당선된 전례가 없다는 게 그 증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행정수도 공약으로 재미 좀 봤다”고 털어놓은 것은 널리 알려진 일화다.
| 남경필 경기지사(왼쪽), 안희정 충남지사 (사진=이데일리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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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지사와 안 지사는 여야의 잠룡(潛龍)으로 꼽히고, 이 의원은 친노(親盧) 좌장인 점만 봐도 이들의 논리를 순수하게 받아들이긴 힘들다. 이들이 문제로 삼는 ‘행정 비효율’은 굳이 천도나 국회 분원이 아니라도 대안이 얼마든지 있다. 도대체 국회의원이 1년에 며칠이나 사용하겠다고 땅값을 빼고도 1000억원이 훨씬 넘게 드는 분원을 새로 짓는단 말인가.
기껏 돈 들여 갖춰놓은 화상회의 체제는 내팽개친 채 공무원들을 눈앞에 불러다가 호통치려는 국회의 ‘갑질 근성’부터 버리는 게 먼저다. 행정 비효율을 입법부가 떠안는 꼴이긴 하나 국회가 필요할 때마다 각 상임위를 세종시에서 여는 게 차라리 바람직하다. 이명박 정부 당시 비효율 때문에 제시된 행정수도 수정안을 극력 저지한 정치권이 또다시 권력에 눈이 멀어 민심에 불 지르며 국민적 갈등을 부채질하는 일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