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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나면 하나씩 생길 정도로 급성장 중인 P2P(Peer to Peer) 플랫폼 시장.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이 업계의 선두주자인 ‘8퍼센트’의 이효진(33) 대표를 최근 서울 사당동 본사에서 만났다.
화장기 없는 맨 얼굴에 질끈 묶은 머리. 갓난 아이를 둔 엄마인 그의 대학생 같은 첫 인상은 과학고, 포항공대 출신이란 이력을 짐작케 했다. 이제 막 돌이 된 딸 아이는 그의 첫 아이와 다름없는 8퍼센트 보다도 어리다. 처음 8퍼센트 창업 당시 그는 홀몸이 아니었다. 배가 남산만하게 나온 임산부가 대부업 대표로 불리며 금융위원회로 불려 갔고, 출산 후 산후조리원에서도 신입직원 면접을 봤다. 출산 한 달 반만에 출근한 이 대표는 “아이가 너무 예뻐 눈에 아른거린다”면서도 “은행에서의 8년 보다 지난 1년이 더 긴 시간처럼 느껴진다”며 그동안의 우여곡절을 회상했다.
과연 무엇이 그녀를 여성 희소지역인 한국 벤처업계에서 국내 P2P 시장을 이끄는 잔다르크로 만들었을까.
“벤처 창업의 목적은 돈이 아닌 꿈”
‘까톡, 까톡’
모두 합쳐 16명인 8퍼센트 직원들이 모인 단체 카톡방은 24시간 쉴새 없이 울린다. 이 대표는 “새벽 3시에 잠이 깨 일어나 카톡방을 보면 미확인 메시지가 수백개”라며 “다 읽고 답을 하다보면 날이 밝는다”고 말했다.
8퍼센트 직원들은 모두 순수 국내파 출신이다. 외국 물 좀 먹은 해외파 출신이 없다. 하지만 다양한 직무 경험과 배경의 직원들이 모여 오롯이 하나의 비전에 집중한다.
8퍼센트 이용 고객의 상당수가 고금리 대부업체 이용자다.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에서 연 20% 이상 고금리 대출을 쓰던 사람들이 8퍼센트에서 대환대출을 받으면 절반 이하로 금리가 절감된다.
인간은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뉜다. 소유를 통해 행복감을 느끼는 소유형 인간과 자신의 존재 가치에서 의미를 찾는 존재형 인간. 이 대표는 전형적인 존재형 인간에 속하는 것 같다. 그는 “벤처를 창업하는 사람들의 목적은 돈이 아닌 꿈”이라며 “우리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한다는 존재 가치에 큰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다.
P2P 대출 리스크, ELS보다 낮다
하지만 그가 처음 입행 때부터 벤처 창업을 꿈 꿨던 것은 아니다. 그의 아버지 역시 같은 은행에서 본부장으로 퇴임 했기에 “조직에서 끝장을 봐야겠다”고 마음을 다 잡았다.
은행에 다닐 땐 직장생활에 최선을 다했다. 본점에만 6년을 근무했고, 리스크 관리의 핵심인 ELS(주가연계증권) 운용을 맡았다. ELS 운용역은 고객의 투자금으로 변동성이 큰 파생금융 상품에 투자해 약속된 수익률은 물론 은행의 수익도 가져다 줘야 한다.
남편·가족의 도움 있어 워킹맘 가능
이 대표가 밤낮없이 일에 몰두 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가족과 남편의 도움 덕분이다. 엔지니어 출신인 남편은 창업 초기 그의 아이디어를 구체화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 대표가 생각한 8퍼센트의 개념을 직접 프로그램으로 구현한 것이다. 지금은 능력이 있는 프로그래머가 5명이나 되지만 그때만해도 이 대표 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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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퍼센트의 목표는 대출액 1000억원을 달성하는 것이다. 지난 1월말 기준 대출 잔액은 100억원 정도. 올 한 해 10배 성장이 목표다. 이 대표는 “해외의 사례를 보면 시장 발전의 로드맵을 알 수 있다”며 “가파른 성장세가 예상되는 올해는 제도적 정비가 돼야 중국의 그림자 금융처럼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효진 대표 프로필>
△1983년 서울 출생. 한성 과학고와 포항공과대학 수학과를 졸업했다. 2006년 우리은행 입사 후 기업금융, 파생상품 트레이딩, 퀀트 등을 담당했다. 2014년 4월 은행을 그만두고 8퍼센트를 창업했다. 아버지는 이익기 전 우리카드 전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