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융복합’을 내걸고 창작한 무용극 ‘한산: 들풀영웅전’의 한 장면(사진=모젼스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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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대 고려대 교수] 무용극에 뮤지컬·연극적 요소와 영상기술을 결합한 융복합 공연 ‘한산: 들풀영웅전’이 지난달 14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용산구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무대에 올랐다. 이 작품은 이순신의 한산대첩을 주제로 삼아 무대화한 대중적 역사물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영웅인 이순신을 중심에 두지 않고 영웅 이순신을 있게 한 민초들을 조명했다는 것이다.
특히 멋진 춤과 아름다운 노래에 보탠 현란한 기술력이 깊은 몰입감을 줬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후원으로 제작한 입체적 영상은 관객에게 눈요기의 재미를 한껏 더하게 했다. 배우의 움직임을 적절히 인식해 그 움직임에 대응하는 영상과 음향효과를 만드는 ‘모션 인식 인터랙션 기술’이 대표적이다. 배우가 움직이면 그 방향으로 영상이 따라가고 거기에 맞는 적적할 음향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한산대첩의 흐름이 서사적인 구성에 그치지 않은 것도 주목할 점이다. 솔로·듀엣·군무를 적절히 배치해 춤공연의 흥미로운 진행도 놓치지 않았다. 배우들은 무대에 있다가 객석으로 내려오기도 하고 객석에서 커다란 막을 들고서 무대 위로 올라가기도 해 행동공간을 확장했다. 여기에 현대음악의 강렬한 비트는 극의 역동성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이순신 역을 맡은 장우영, 권준 역을 맡은 정승욱,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을 맡은 한민엽의 열연도 돋보였다. 특히 작품에서 학으로 나오면서 전쟁의 참상과 사랑의 소중함을 노래한 유수빈이나 학으로 등장한 박상현, 이순신 역의 장우영이 보여준 연기력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김원은 가족을 잃고 헤매는 할머니 역을 감초처럼 잘해내 관심을 집중시켰다. 권준 장군과 그의 아내(홍지인)가 함께 몽환적으로 추는 춤은 전쟁의 참상 가운데서도 사랑이 이루어지는 진리를 잘 표현해냈다. 누군들 전쟁에 기꺼이 참여할 것인가. 그럼에도 민초들은 턱밑까지 닥친 적군의 칼날을 막고 조총소리를 들어가며 나라를 위해 싸우고 쓰러진다. 과연 전쟁이 끝났을 때 이들 민초를 누가 기억해야 할 것인가. 이 작품은 그 평범한 진리에 대해 묻고 또 답한다.
작품의 독특함은 시작과 마무리의 영상미학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관객이 현대의 어느 박물관으로 들어가 난중일기를 펼쳐 한산대첩 장면을 읽어보다가 홀연 그 일기의 이면에 담겨 있을 민초들의 삶을 엿보는 것을 형상화한 구성이다. 극이 끝난 뒤엔 난중일기를 덮고 박물관을 빠져나온다. 어찌 보면 흥미로운 영상과 춤, 노래로 이끌어온 대중적 작품이지만 내면에 품고 있는 주제는 녹록지 않은 민중의 힘을 증언하는 것이다. 완성도를 점차 보완한다면 두고두고 앙코르무대를 올릴 수 있는 값어치가 있다.
| ‘융복합’을 내걸고 창작한 무용극 ‘한산: 들풀영웅전’의 한 장면(사진=모젼스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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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융복합’을 내걸고 창작한 무용극 ‘한산: 들풀영웅전’의 한 장면(사진=모젼스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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