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박원순 재생사업 1번지 마포 연남동 "재건축 안부럽다"

철거 대신 저층주거지 보전
도로·전선 정비, CCTV·공동시설 설치에 주민 만족도 '쑥'
홍대 상권 확장에 땅값 3.3㎡당 300만원↑
난개발 우려, 주차난 등은 아쉬워
  • 등록 2013-10-10 오전 7:02:02

    수정 2013-10-10 오전 8:39:14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마을 재생사업이) 아파트 달랑 한 채 받는 재건축사업보다 훨씬 낫죠. 동네 사람들도 주거 환경이 좋아지고 단독주택을 신축해 월세까지 받을 수 있게 돼 만족감이 높아요.” (서울 마포구 연남동 주민 이송자씨)

“요즘 누가 재개발·재건축을 하려고 하겠어요. 바로 옆 단독주택 재건축 지역도 조만간 구역 해제될 것이라는 말이 돌면서 원룸이나 빌라 신축 수요가 몰려 3.3㎡당 1300만원이었던 대지지분 가격이 1700만원까지 뛰었습니다. 완전히 ‘역전 현상’이 벌어진 것이죠.”(연남동 M공인중개업소 관계자)

태풍 ‘다나스’의 간접적인 영향으로 잔비가 내리던 지난 8일 오후에 찾은 서울 연남동. ‘길공원길’이라 이름 붙여진 동교로41길에 접어들자 살가운 풍경이 펼쳐진다. 자동차 두 대가 지나는 폭 13m 도로 중심에 벚나무가 심어진 화단이 잘 정비된 길을 따라 300m 가량 곧게 뻗어 있다. 길 양편에 늘어선 4~5층짜리 신축 건물 1층에는 홍대 상권에서나 볼 법한 찻집, 수공예품 가게, 생맥주집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주민들은 도로 한 켠의 너비 1m 됨직한 보행자 통로를 따라 천천히 거리를 통과했다.

▲주거환경관리사업이 마무리되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진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길공원길 모습. 자동차 두 대가 지나는 폭 13m 도로 중심에 벚나무가 심어진 꽃길이 300m가량 곧게 뻗어 있다. (사진=박종오 기자)
◇동네 분위기 밝아져 주민 만족도 높아

언뜻 이국적 분위기마저 느껴지는 이곳이 이른바 ‘박원순식 재생사업 1번지’다. 당초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뉴타운 사업의 대안으로 ‘휴먼타운’이라는 개념을 선보이며 성북동·인수동·암사동 단독주택지에 이어 지난 2010년 11월 시범사업지로 선정한 곳이기도 하다. 휴먼타운이 지난해 초 ‘주거환경관리사업’이라는 명칭으로 정식 법제화되면서 바통을 넘겨받은 박원순 시장이 이 사업으로 전환 추진해 지난달 공사를 마쳤다. 휴먼타운이 아닌 주거환경관리사업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처음 준공된 사업지다.

핵심은 저층 주거지역의 보전과 재생, 마을 공동체 활성화다. 전면 철거 방식으로 이뤄져 기존 커뮤니티를 파괴하는 예전의 재개발·재건축사업과 방향이 정반대다. 편의성과 안전성 등 아파트 단지의 장점과 골목길, 커뮤니티가 살아 있는 저층 주택의 장점을 한데 모은다는 휴먼타운의 기치는 그대로 살아남았다. 3년 전 주민 반대로 단독주택 재건축사업이 무산된 연남동 239-1번지 일대를 포함한 8만2900㎡ 면적에 주민 중심의 정비사업이 추진됐다. 공공이 기반시설을 정비하고 개인이 자기 집을 개량하는 방식이다. 사업비 약 54억원을 들여 거미줄처럼 얽힌 전선과 전봇대를 지하에 묻고 울퉁불퉁한 도로를 새로 깔았다. 1개 뿐이었던 폐쇄회로(CC)TV는 11개로 늘리고, 가로등을 추가 설치하는 대신 담장을 허물었다.

주민들은 대체로 만족감이 높았다. 직장인 정은지(여·24)씨는 “예전에는 주택가까지 차가 다니고 길도 어두워 여자 혼자 다니기 불편했다”며 “공사 뒤 인도가 생기고 건물 1층에 카페까지 들어서는 등 분위기가 밝아져 산책하기가 좋아졌다”고 말했다. 단독주택에 거주하는 이미아(여·40대)씨는 “거리가 깨끗해지고 주민 커뮤니티 시설까지 생겨 거주 여건이 많이 개선됐다”며 “재건축을 하면 땅 가진 사람은 아파트 한 채만 받고 끝이라는데 재건축사업을 추진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지난 1년 사이 형성된 소규모 마을 상권의 평가도 긍정적이었다. 길공원길 초입에서 찻집과 작업실이 결합된 ‘이알’을 운영하는 장용해(여·39)씨는 “홍대와 가깝지만 그만큼 붐비거나 비싸지 않고 마을 같은 정겨운 분위기까지 느껴져 좋다”고 말했다. 4개월 전 ‘씨에스타’를 개업한 김정은(여·33)씨는 “원주민들은 뭐가 달라졌나 못 느낄 수도 있지만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변화가 더 빨리 감지된다”며 “거리가 밝아지면서 동네에 여유로움과 활기가 생겼다”고 전했다.

길공원길에 접한 마을 커뮤니티센터에서 만난 주민들의 호응도 높았다. 지상 4층 연면적 475.66㎡ 규모로 지어진 이 건물에는 마을관리사무소와 북카페, 어르신나눔터, 공동육아방 등이 설치됐다. 주민 공동체의 거점으로 향후 한우·채소 등을 판매하는 사회적 기업이 운영되고 주민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이곳 카페에서 일하는 설모(여·27)씨는 “저렴한 가격에 커피를 마시며 눈치보지 않고 편안히 머물 수 있어 특히 젊은 부부들이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센터를 둘러보던 구로구 고척동 주민 정혜자(여·57)씨는 “주민들이 함께 운영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참 부럽다”며 “우리 동네도 가능하다면 신청하고 싶다”고 말했다.

◇집값 상승 기대감 ‘솔솔’

주변 부동산업계에서는 이 같은 마을의 변화를 높이 샀다. 몸살을 앓고 있는 서울 인근 지역 재개발·재건축사업장들과 달리 장기적인 호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지용 온누리공인 대표는 “2010년까지 이 지역 단독주택 땅값이 3.3㎡당 2000만원을 밑돌며 주춤했지만 지금은 길공원길 주변 주택의 경우 지분값이 2300만원 선을 호가한다”며 “홍대 상권이 연남동 쪽까지 확장되면서 게스트하우스와 빌라 신축 수요 등이 크게 늘어나 지금은 매물을 찾기가 어렵다”고 전했다. M공인 관계자는 “재생사업이 집값에 크게 영향을 줬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거주 여건이 좋아졌다는 점에서 발전 가능성은 분명히 커진 것”이라며 “최근 젊은층 유입이 늘면서 원룸 공실도 거의 없고 수익률도 7~8% 선으로 높아 인근 재건축 구역 조합원들도 부러워하는 눈치”라고 말했다.

다만 여전히 협소한 주차 공간과 우후죽순 난립한 연립주택으로 인한 난개발 우려는 한계로 지적된다. 실제로 이날 찾은 길공원길에는 불법 주차된 차량이 많아 기껏 만들어 놓은 인도를 자동차가 그대로 밟고 통과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또 길공원길을 비롯해 마을 곳곳에 신축 연립주택이 지어졌거나 건설 중이어서 저층 주거지 보전이라는 사업의 근본 취지가 무색해 보였다. 주민 최모씨는 “그간 집주인이 수익을 높이겠다며 신축한 건물만 60여채”라며 “별로 달라진 게 없는데 밤새 술 마시고 떠드는 젊은이들만 많아져 조용하던 동네가 오히려 소란스러워졌다”고 지적했다.

연남동 재생사업운영위원회의 허현 부위원장은 “가급적 리모델링을 유도하고 싶었지만 증축이 까다롭다 보니 설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며 “주택 신축을 어떻게 관리해야 사업의 기본 취지를 살릴 수 있을지는 앞으로 다른 사업장에서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 관련기사 ◀ ☞ 서울 새창고개·연남동 폐철로 공원조성 8일 '첫 삽' ☞ 서울 저층주거지 정비사업 1호 '마포구 연남동' 새단장 ☞ 성북구 장수마을, 박원순式 재생사업 본격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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