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11월29일자 보도)
국내 시계 브랜드인 ‘로만손’이 치열한 대선 경쟁 속에 한때 화제에 올랐다. 지난달 26일 국회 브리핑에서 대통합민주신당 김현미 대변인이 “지난 7월27일 한나라당 경선 울산합동연설회 때 김윤옥씨가 차고 있던 시계는 1500만원 상당의 ‘프랭크 뮬러’ 제품으로 밀수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던 것. 하지만 김윤옥씨가 차고 있던 시계는 국내 시계 브랜드인 ‘로만손’ 제품으로 밝혀졌고, 소송 사태로 이어졌다.
로만손은 올해 매출액 600억원, 영업이익 46억원을 거둘 것으로 전망하는 중견회사다. 4개의 시계 브랜드와 2개의 주얼리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 가락동의 로만손 본사에서 만난 김기석(46) 로만손 사장은 “당시 주위에서는 우리 제품이 알려져서 홍보 효과를 얻게 된 것 아니냐고 말들을 많이 했는데 사실은 무척 곤혹스러웠다”고 했다. 그는 “기업 하는 사람으로서 정치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며 “우리의 공식 답변은 ‘노코멘트’였고, 매장에 가서 구입하셔서 직접 확인해 보시라고만 대답했다”고 말했다.
문제가 됐던 시계는 지난 2005년 8월 로만손 개성공장 준공식을 기념해 만든 시계로 소비자가 11만8000원짜리 ‘벼리 컬렉션’이다. 벼리는 ‘일이나 글의 뼈대가 되는 줄거리’라는 뜻의 순우리말로, 사회의 기반인 중년층이 평화통일을 이뤄나가는 역할을 해낸다는 뜻을 담았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 모양이 각인돼 있으며, 지금까지 1000여 개가 판매됐다고 한다.
김 사장은 “시계는 아이템 특성상 비슷할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전문가들이 볼 때는 하나하나가 확연히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명품에 죽고 못사는 사람도 있고, 또 그런 사람들을 비난하는 사람이 함께 사는 한국의 사회적 특성이 빚은 해프닝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일본, 한국, 중국의 명품 열기는 유명하죠. 일본만 해도 명품 브랜드 신상품 컬렉션 소개 책자를 편의점에서 팔 정도입니다. 패션 관련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명품에 대한 애정은 긍정적으로 보고 싶지만, 능력에 맞지 않는 과다한 소비는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사장은 “로만손은 ‘신명품’이라고 규정하고 싶다”고 했다. 가치는 명품 수준이면서, 가격은 합리적인 제품이라는 뜻이다. 그는 “명품의 구매력은 인구의 1% 안팎이지만, 신명품은 인구의 40%가 잠재적인 구매층”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0월2일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은 노무현 대통령 내외도 로만손 시계를 차고 있었다. 남북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에서 만든 제품이었다. 같은 제품 9세트가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 북측 관계자들에게 선물로 전달됐다.
로만손은 지난 2005년 개성공단에 입주했다. 시계공업협동조합원 회원사인 8개 협력업체를 설득해 함께 개성으로 갔다.
물론 어려움도 있었다. 생산성이나 품질이 현격하게 떨어졌던 것. 시계 자판에 작은 티가 있는 것을 발견해 폐기처분을 하자 북한 근로자들은 “쓰는 데 지장이 없는 걸 왜 그러느냐”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수출을 위해 납기를 맞춰야 하는 문제, 제대로 된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 등을 교육시키는 데만 2년 정도 걸렸다는 설명이다. 현재 개성공단 협동화공장에서 1200명의 북한 근로자들이 월 5만 개씩 시계를 만든다. 총생산량의 60% 수준이다.
로만손이 출범한 것은 지난 1988년 4월. 김 사장의 형인 김기문 회장(52·중소기업중앙회장)이 직원 6명으로 시작했다. 스위스의 유명한 시계 생산지인 ‘로만시온’의 뒷부분을 발음이 쉽도록 고쳐 회사명으로 삼았다. 삼성, 오리엔트, 아남, 한독 등 ‘빅4’가 휩쓸던 시계시장에 뛰어든 로만손은 해외 시장에 눈을 돌렸다.
“회장님(김 사장은 6살 터울인 형을 꼬박꼬박 회장님이라고 했다)께서는 브랜드에 선입견이 없는 해외 시장에 눈을 돌리셨죠. 회장님의 뚝심과 카리스마가 없었다면 창업이 어려웠을 겁니다.”
김 사장은 “시계 시장의 급격한 변화에 능동적이고 빠르게 대처한 덕분에 시계업체들의 도산 속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IMF와 시계 시장 개방은 국내 대형 시계업체들을 내리막길로 내몰았다. 소비자의 트렌드 변화도 시계 시장의 판도를 바꿔놓았다. 시계가 ‘결혼 예물의 대명사’라는 지위를 잃기 시작한 것이다.
로만손은 그 덕분에 IMF를 이겨낸 대표 기업으로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기도 했다.
김 사장은 김기문 회장이 뚝심 경영으로 세운 로만손의 변신을 주도했다. 김 사장은 1980년대 충무로에서 영화제작자로도 활약했다. 최수종, 하희라 주연의 ‘풀잎사랑’ 등 5~6편의 영화 제작을 맡았다.
1989년 로만손에 합류한 김 사장은 2000년 부사장에 오른 뒤 사업 다각화에 주력했다. 수출 품목도 해당 국가의 특성에 맞게 현지화했고, 시계 생산 업체에서 토털 패션 브랜드로 변신을 꾀했다.
우선 각 지역의 특징에 따라 차별화한 전략도 주효했다. 팔찌를 좋아하는 러시아인들의 특성을 감안해 러시아에는 팔찌 시계를 주력으로 내세웠고, 중동의 부호들을 위해서는 다이아몬드와 금으로 치장한 제품을 보냈다. 김 사장은 “러시아에 수출하는 여성용 팔찌시계 ‘지젤’은 러시아의 한 신문이 여성 독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받고 싶은 선물’ 1위에 뽑히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내년부터 중국 시장에 본격 진출할 것”이라며 “60개 매장을 직영하고 한국의 2~3배 수준의 매출을 올린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로만손 시계를 꼭 차줬으면 하는 스타가 누군지 물었다.
“수영선수 박태환과 피겨선수 김연아가 우리 시계를 차주면 좋겠습니다. 남들이 안 된다고 할 때 온갖 어려움을 딛고 세계무대에 도전해 당당히 살아남고 인정받은 선수들이지 않습니까. 아직 가능성도 크고…. 그런 측면에서 우리 회사 이미지가 딱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