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경기도 파주에서 전력 IT부품 생산기업을 운영하던 김 모(68)대표는 지난 7월 22년 만에 회사를 정리했다. 소위 잘 나갈 때에는 연매출 55억원에 이르고 직원도 33명을 뒀지만 주거래처인 한국전력의 적자가 커지면서 설비투자를 줄이다 보니 직격탄을 맞아서다. 김 대표는 “매출은 10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하고 대출금리도 코로나19 전후로 3배 가까이 치솟았다”며 “수년 내 경영상황이 개선될 가능성도 없고 월 600만~700만원의 이자 부담을 버틸 자신이 없었다”고 토로했다.올해 9월까지 기업 파산 신청이 1200건을 돌파해 역대 최대 규모로 늘어났다. 아직 4분기(10~12월)가 남아 있는 상황이라 지금 속도라면 올해 기업 파산 건수는 1600건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코로나 기간 주춤했던 한계기업의 연쇄 파산이 시작됐다는 우려와 함께 기업 재기를 도모할 지원방안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 (그래픽= 김일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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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이데일리가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재호 의원(더불어민주당)을 통해 대법원에서 단독으로 받은 자료를 보면 올해 9월말까지 현재 전국 법원에서 접수한 법인 파산 신청 건수는 1213건이다. 지난해 동기(738건)보다 64.4%나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이미 지난해 연간 파산신청 건수(1004건)보다 20.8% 많다.
이는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2006년 이후 최대치다. 9월 파산 신청건수(179건)는 7월(146건)과 8월(164건)에 이은 올해 월별 최다 기록이기도 하다. 올해 하루에 4.5개의 기업이 법원을 찾아 파산 신청을 한 셈이다.
파산신청은 부채상환이 어려울 때 남은 자산을 현금화해 채권자에게 나눠주고 채무를 면책받는 제도다. 기업으로서 존속할 가치가 청산하는 가치보다 작을 때 적용된다. 회생이 기업을 어떻게든 살려보겠다는 재건형 절차라면 파산은 남은 자산으로 빚잔치를 하고 회사를 접는 청산형 절차다. 고물가·고금리·경기침체 등 복합위기가 이어지면서 기업을 살릴 가능성이 없다는 전망에 따라 파산신청 건수가 증가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기업 회생보다 파산을 선택하는 비율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8년에는 기업 회생 신청건수가 파산 신청건보다 21.6% 많았다. 2019년에도 회생 신청건수가 7.7% 많았다. 하지만 코로나19 발생 이후 파산 신청건수가 회생 신청건수보다 많아져 2020년 19.8%, 2021년 33.2%, 2020년 51.9%, 2023년(9월말 현재 733건) 65.5% 등을 기록했다.
박재호 의원은 “현재와 같은 속도라면 올해 기업 파산 신청 건수는 연말에 1617건을 넘어설 것”이라며 “충분한 미래 성장성을 확보한 기업이 일시적 유동성 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 정부가 정책적으로 적극 지원하고 회생 가능성이 없는 기업은 신속한 탈출구를 마련해 연쇄적인 경제 충격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