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조민정 기자] “6년 만에 지인이 생일선물을 챙겨줘서 이상하더라니…청첩장을 ‘띡’ 보내더라고요.”
직장인 한모(29)씨는 대학 시절 알던 지인에게 최근 생일선물을 받고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5년 넘게 연락도 없이 지냈는데 다른 친구들도 같은 연락을 받았다는 소리를 듣자 ‘결혼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한씨는 “이후에 지인이 갑자기 ‘단톡방’을 만들어서 오랜만에 모임을 갖자고 하더니 한 달 뒤에 청첩장을 주더라”며 “안 그래도 지갑 사정이 빠듯하고 축의금 기준도 올랐다고 하는데 기분이 너무 별로였다”고 하소연했다.
| 결혼식장 (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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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이 불어오는 4~5월 주변에서 들려오는 결혼 소식에 사회초년생 등 MZ세대들은 축의금에 유독 부담을 느끼고 있다. 코로나19로 미뤄졌던 결혼식이 집중적으로 진행되면서 부쩍 많아진데다 고물가 속에서 모든 경조사를 챙기기엔 지갑 사정이 너무 빠듯해서다. 물가 상승으로 ‘5만원 내고 밥 먹으면 민폐’라는 말도 나오면서 결혼식에 참석하면서도 5만원을 낼지, 10만원을 낼지 고민 끝에 봉투를 내미는 이들도 적지 않다.
최근 축의금 5만원을 냈다는 직장인 김모(32)씨는 “물가가 2배가 오른 것도 아닌데 축의금을 10만원 하는 건 좀 오버라고 본다”며 “7만원을 줄 수도 없고 5만원 내면서도 눈치 보이는데, 10만원 할 바엔 그냥 안가고 5만원 내는 게 낫지 않나”고 반문했다. 이모(29)씨는 “요즘 식대 자체가 최소 5만원이라서 ‘5만원 내면 양심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고 하더라”며 “축의금 낼 때마다 엄청 고민하면서 내는데, 최근 10만원 축의한 회사 동료가 이번 달에 퇴사한단 소식을 들으니까 돈이 아깝더라”고 설명했다.
축의금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면서 최근 적정 축의금에 대한 다양한 설문조사도 나오고 있다. 구인·구직 플랫폼 기업 인크루트가 대학생·구직자·직장인 등 1177명을 대상으로 결혼식 축의금 적정 액수를 설문 조사한 결과 알고 지내는 동료에겐 5만원, 친한 사이엔 10만원이 적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 조사에 따르면 ‘같은 팀이지만 덜 친하고 협업할 때만 마주하는 직장 동료’는 5만원을 한다는 응답이 65.1%에 달했다. ‘사적으로도 자주 소통하는 직장 동료(전 직장 포함)’와 ‘거의 매일 연락하고 만남이 잦은 친구 또는 지인’은 각각 63.6%, 36.1%로 10만원이 가장 적정하다는 응답을 보였다. 지난해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2030 미혼남녀 3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선 적절한 평균 축의금은 7만 8900원으로 나타났다.
| 결혼식 적정 축의금 액수(그래픽=김정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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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의금이 부담으로 다가오다 보니 뜬금없이 연락 오는 지인들에 대해 분노를 느끼는가 하면, 이유 없이 오랜 친구에게 문자가 와도 의심부터 하게 된다. 취업준비생 박모(28)씨는 최근 고등학교 동창에게 연락을 받고 덜컥 ‘결혼하는 거 아닌가’란 생각이 앞섰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제 주변에서 결혼하는 나이가 되다 보니 오랜만에 연락 오는 친구들 보면 먼저 이런 생각이 든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식대’를 기준으로 축의금을 내는 것이 객관적일 수 있다며, 돈을 마음의 기준으로 삼는 결혼식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요즘은 청첩장을 줄 때부터 올 건지 먼저 물어보기도 하는데, 식대를 생각하면 안 가고 5만원을 내는 것도 방법”이라며 “결혼식에 보통 고가의 비용을 들이는 데 합리적이지 않은 소비로 사치스러운 결혼 문화도 개선돼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