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고양시에서 4세 딸을 키우는 김모(35)씨는 최근 아이를 유아 대상 영어학원(영어유치원)에 보내기 시작했다. 외벌이다보니 영어유치원에 보낼 형편은 아니지만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다른 지출은 줄이기로 했다. 그는 “이제 가끔 가던 해외여행은 엄두도 못 내게 됐다”고 말했다.
대학 등록금의 2배에 달하는 학원비에도 이른바 ‘영어유치원’(유아 대상 영어학원)의 인기가 식지 않고 있다. 유아기 때 영어 교육에 집중하면 향후 고입·대입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는 인식 탓이다. 이런 학부모들의 선호도에 힘 입어 학령인구 감소에도 불구, 영어유치원 수는 5년 만에 2배 가까이 증가했다.
|
9일 교육부에 따르면 학령인구 감소에도 영어유치원은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811곳으로 파악됐다. 이는 2017년(474곳)과 비교해볼 때 337곳(71.1%)이 증가한 수치다.
다수의 학부모들은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경기도 수원에서 5살 아들을 키우고 있는 이모(37)씨는 “아이의 미래를 위해 영어유치원을 보내려 했는데 가격을 듣고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2018학년도부터 시행된 수능 영어 절대평가가 영어유치원 수요를 증가시켰다는 분석도 나온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영어유치원을 통해 일찌감치 영어에 대한 강점을 높인다면 그 이후엔 국어·수학 등 다른 주요 과목에 집중할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어 절대평가에선 90점 이상만 얻으면 1등급을 받을 수 있기에 유아단계에서 영어실력을 키워두면 향후 입시에서 유리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는 분석인 셈이다.
|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없는 학부모들이 자녀를 영어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빚을 내는 경우도 있다. 대전에서 6살 아들을 키우는 강모(34)씨는 “대출을 받아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냈다”며 “영어유치원을 나와야 국제학교 진학으로 이어질 수 있고 좋은 대학에 갈 가능성이 높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른바 ‘영어유치원’으로 불리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은 유아교육법을 적용받지 않는다. 일반 사립유치원처럼 ‘최근 3년간 물가상승률의 평균 1.5배까지만 원비 인상이 가능하다’는 법적 규제가 없어 학원비가 치솟는 상황이다. 서울 지역 영어유치원 311곳의 학원비가 월 평균 100만원 넘는 이유다.
교육계에선 영어유치원이 사실상 사립유치원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만큼 그에 맞는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영어유치원에 보내지 못하는 학부모들의 불안감과 박탈감이 계속 커지고 있다”며 “학원법 개정을 통해 영어유치원에 대한 규제를 일반유치원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