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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참사에 세월호 유족들이 또다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2014년 세월호참사로 고등학생 자녀를 잃은 유가족 A씨(50대·여·경기 안산 거주)는 31일 전화인터뷰를 통해 “이태원참사 소식을 듣고 텔레비전을 켜지 않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자식 같은 청년들이 처참하게 숨진 내용의 뉴스 기사를 A씨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는 “처음 이태원 사고 소식에 가슴을 졸였다”며 “사고가 크지 않기를 바랐고 세월호 희생 아이들 생각이 나서 숨도 쉬어지지 않았다”고 애절함을 보였다.
이어 “우리(세월호 유족)보다 이태원 현장에 있던 당사자들을 생각하면 너무 힘들고 아프고 그럴 것이라고 여겼다”며 “또 그 가족들은 얼마나 힘들지 생각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태원참사, 보는 것도 힘들어
A씨는 “세월호참사 이후 8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했다”며 “죽을 때까지 자식을 먼저 보낸 슬픔을 안고 살아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이태원 사고도 평생 안고 가야 할 문제인 것 같다”며 “트라우마 극복은 안된다”고 우려했다.
또 “우리는 세월호참사를 극복하지 못한 문제가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 이태원참사를 언급하는 것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A씨는 “8년간 힘들게 살았다”며 “세월호 유족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랐고 우선 진상규명이 돼야 뭔가가 이뤄지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A씨는 “그들(이태원 가족 등) 앞에서 우리의 아픈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며 말을 아꼈다. 이태원 사고로 트라우마 고통을 겪는 것은 다른 유족들도 비슷했다.
고(故) 신호성군(참사 당시 안산 단원고 2학년)의 어머니 정부자씨(54)는 최근 트라우마가 심해졌다. 정씨는 호성군을 잃은 뒤 눈앞에서 아들이 보이고 목소리가 들리는 고통을 겪었다. 밥은 넘어가지 않고 화만 나며 몸은 쇠약해졌다. 이는 약으로 치료할 수 없는 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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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는 인터뷰에서 “세월호참사 뒤 8년이 지났지만 바뀐 것이 없다”며 “정부가 침몰 원인을 밝히지 않고 책임지는 것도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또 “사참위 결과를 보고 대다수 유족은 그동안 억눌렀던 감정이 폭발해 병이 깊어졌다”며 “심한 트라우마가 올라와 모두 병원에 다닌다”고 아픔을 드러냈다.
정씨는 “세월호참사 이후 안전한 사회가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며 “어떻게 서울 한복판에서 그 많은 청년이 희생될 수 있느냐. 정말 말도 안되는 국가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태원 축제는 국가가 활성화해놓고 그 많은 인원이 왔는데 서울시는 무엇을 한 것이냐”며 “국가가 책임을 회피하면 국민은 상처를 받는다”고 주장했다.
정씨는 이날 오후 유가족들과 서울 녹사평역 근처에 마련된 이태원참사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희생자를 추모하고 이태원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정씨는 “저희들이 2014년에 자식을 잃고 뭔지 몰랐을 때, 넋이 나가 있을 때 국민이 위로해주고 손잡아주고 그러한 고마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태원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전달하고자 분향소에 갔다”며 “유족들을 보듬어주려는 측면이었다”고 설명하며 잠시 목이 잠겼다.
그는 “자식을 보낸 부모는 평생을 가도 잊을 수 없다. 일부 시민은 잊으라 하고 가슴에 묻으라고 하는데 어떻게 그러냐”며 “그럴 수 없다. (이태원 유족들이) 어려운 상황을 잘 이겨내야 한다”고 표명했다.
한편 지난 29일 오후 10시15분께 서울 이태원 해밀톤호텔 근처 골목에서 핼러윈 행렬 중 수백명이 넘어지면서 압사사고가 났다. 154명이 숨지고 100여명이 다쳤다. 앞서 2014년 4월16일 진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세월호참사에서는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교사 등 304명이 희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