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북접근법이 완전히 일치되도록 조율해 나가기로 합의했다’는 공동성명 문구가 눈에 띕니다. 미국이 문재인 정부의 나홀로 대북정책을 우려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문 대통령은 남은 임기 1년 안에 대형 이벤트에 대한 욕심이 생길 텐데, 무리한 대북정책은 한미 동맹의 균열만 부를 뿐이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지난 2005년부터 스탠퍼드대에서 아시아태평양 관련 연구를 총괄하고 있는 재미 석학인 신 소장은 이번 정상회담을 이렇게 요약했다. 한국 기업들이 중국이 아닌 미국 주도의 반도체·배터리 공급망에 들어가 경제로 동맹을 확대한 성과가 있었지만, 대북정책 측면에서는 철저히 ‘바이든팀’의 페이스대로 흘러갔다는 것이다.
‘완전한 일치’는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정부를 향해 대북정책에 있어 서둘지 말라고 신호를 준 것이라는 게 신 소장의 해석이다. 같은 맥락에서 신 소장은 문 대통령의 최우선 대북 과제는 바이든 정부와 조율을 완전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바이든 정부는 (정상간 담판을 통한 톱다운 방식을 선호한) 트럼프 정부와 다르다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며 “한국 입장에서는 한국을 잘 아는 외교 베테랑이 즐비한 바이든 정부를 상대하는 게 더 까다로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美 성김 임명, 대북 ‘상황 관리’ 목적
-정상회담 총평을 해달라.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의 페이스대로 원하는 걸 거의 얻었다. 특히 반도체와 배터리 투자를 유치하면서 중국을 견제하려는 목적의 공급망을 확대·강화한 건 큰 소득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미국이 민감한 문제에 대해 수위조절을 해줬다는 점이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중국 문제를 명시하지 않은 점 등이다.
-미국이 한국을 두 번째로 초청했다.
△이례적인 일이다. 미국 정부 태스크포스(TF)에서 약 한 달 후 중국 관련 정책이 나오는 걸로 안다. 그 전에 일본과 한국을 불러서 동맹을 다시 한 번 다지는 게 미국의 목적이었다. 한국과 정상회담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대(對)중국 메시지인 것이다. (미국의 대북 정책 검토 완료 발표 3주 후에 열렸다는 점에서) 대북 문제 역시 중요한 화두였다.
-한미간 대북 정책 조율은 어떻게 보는가.
-추가로 설명하자면,
△바이든 대통령이 오마바 정부에서 대북특별대표를 지냈던 성 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을 다시 대북특별대표로 임명했다. (문 대통령은 성 김 임명을 두고 ‘깜짝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성 김 대표는 대북 문제를 오랜 기간 다뤄온 베테랑이다. 또 직업 외교관 출신으로 외교적인 관례와 절차를 존중하고, 주한 미국대사까지 역임했기 때문에 한국과의 소통이 능숙하다. 바이든 정부의 대북 정책 방향성을 엿볼 수 있는데, 한마디로 당분간 새로운 시도보다는 상환 관리에 초점을 두겠다는 것으로 본다. 톱다운 방식의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달리 바이든 대통령은 전통적인 외교 방식을 선호한다는 게 이번에 확연히 나타났다. 바이든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성 김 대표를 소개하지 않았나. 한국을 향해 ‘저 사람에게 맡겼으니 잘 모시라’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한국이 대북 문제에 있어 끼어들 여지는 더욱 줄어들 것이다.
美와 대북접근 완전히 일치하는게 최우선
-문 대통령은 교황 방북 등을 또 남북관계 개선 계기로 삼으려 할텐데.
△트럼프 정부 때는 그런 전략이 오히려 먹혔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 바이든 행정부 안에 한국을 잘 아는 외교 베테랑들이 많다. 미국은 이번 회담을 통해 대북 정책에 있어 자신들의 방식으로 간다는 걸 확인했다. 한국이 미국의 정책 의도 혹은 방향과 달리 무리한 정책을 추진한다면 한미 동맹의 균열만 생길 것이다. 더이상 한반도 운전자론 같은 어설픈 담론에 빠지면 안 된다. 미국과 대북 접근을 완전하게 일치하는 게 최우선 과제다.
-판문점 선언에 기초한 비핵화 문구가 들어갔다.
△그렇다. 싱가포르 공동 성명을 기초로 한다는 것은 이미 미국 내 공감대가 형성돼 있던 사안이다. 다만 판문점 선언을 인정한 것은 문 대통령의 체면을 세워준 것으로 평가한다. 반면 북한 인권 문제를 대놓고 언급한 건 문재인 정부로서는 난감할 수 있다.
-북한은 어떻게 반응할까.
△문 대통령은 남은 임기에 북한과 관계에서 마지막 업적을 남기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돌파구를 찾는 게 여의치 않다. 북한은 이번 회담을 보며 결국 상대는 미국이라는 점을 재확인했을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추가 도발 가능성이 있다. 북미 비핵화 협상은 성 김 대표가 주도적으로 맡는 문제다.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정부처럼 곧바로 최고위급으로 가지 않고 실무 단계부터 밟아나갈 것이다. 다시 길고 지루한 외교적 줄다리기가 시작될 것으로 본다.
-중국 견제 문제는 어떻게 보는가.
△한국으로서는 너무 큰 고민이다. 이번에는 수위조절에 초점을 맞춘 게 눈에 보인다. 공동성명에 ‘대만해협에서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문구가 처음 들어갔지만, 미일 회담 당시보다 수위는 낮았다. 신장 위구르 인권 문제 역시 나오지 않았다. 미국이 일본보다 한국 입장을 배려했다고 본다.
-대만 외에 쿼드(QUAD), 남중국해가 성명에 들어갔다.
△한국이 쿼드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대중 견제 정책에 일정하게 협조하는 선에서 타협한 것이다. 반도체, 배터리 등 중국 견제 산업에 한국이 대규모로 투자하면서 이 정도의 수위조절이 가능했다. 하지만 공동성명에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우리 각자의 접근법’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두 나라간 이견은 여전히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어떻게 반응할까.
△당장 예측은 어렵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고, 세게 나올 수도 있다. 한국 정부는 중국을 향해 ‘우리는 할 만큼 했다’고 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국의 입지가 점점 어려워지는 건 사실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계속 가져가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백신 확보는 충분했다고 보는가.
△기대가 높았던 만큼 실망은 클 수밖에 없다. 미군과 가까이 접촉하는 한국군 55만명에게 백신을 제공한다는 건 미군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공급을 약속한 것이다. 회담의 주요 목적 중 하나가 백신 확보였다면, 실패라고 봐야 한다. 또 포괄적인 한미 글로벌 백신 파트너십을 구축한다는 것은 사실상 미국의 어젠다에 가깝다.
신 소장은…
△연세대 사회학과 △미국 워싱턴대 대학원 사회학 석·박사 △아이오와대 교수 △UCLA 교수 △스탠퍼드대 교수(스탠퍼드대 인문사회과학대 첫 한국인 종신 교수)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