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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만 해도 신세대라는 의미였던 X세대가 이제는 아재로 돌아왔다. 40세 불혹의 나이로 중년임에는 분명하지만, 스스로는 아직도 ‘오빠’라고 생각한다. 신세대 중년으로 사는 셈이다.
이들은 소비에 있어서 기존 중년의 이미지도 바꿔놨다. 자기관리나 취미를 위해 적극적으로 지갑을 여는 ‘아재 슈머’와 패션과 미용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중년 그루밍족’이 부상하고 있다. 젊은 층의 ‘전유공간’으로 여겨졌던 편의점이나 인터넷쇼핑몰에서도 점차 영역을 확장하는 추세다. 오만상을 찌푸리며 아내 따라 마지못해 백화점을 찾았던 남편들도 이제는 자발적으로 방문해 남성관을 찾는 모습으로 변화 중이다.
누가 뭐래도 슬림핏·BB크림 고수
이들 영포티(나이에 비해 젊게 사는 40대 남성)의 주요 특징은 ‘나는 나’다. 남들 눈치보기 보다 자신의 취향대로 소비하고 삶을 꾸려나간다. 김 모(44)씨는 복숭아뼈 위로 올라오는 9부 슬림핏 바지와 몸에 딱 붙는 와이셔츠를 즐겨입는다. 그는 “아버지 옷장엔 어머니가 사준 흰색 와이셔츠와 튀지 않는 정장 일색이었는데 교복 같아 보였다”며 “요새 캐주얼데이를 운영하는 회사도 많고 무엇보다 패션은 나를 표현하는 하나의 도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옷에 대한 투자는 아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직장생활 10년차인 이 모(40)씨는 30대 중반부터 남성 전용 BB크림을 사용했다. 피부 트러블 때문에 자신감이 없었는데 주변 권유로 한번 BB크림을 써본 이후 필수품이 됐다. 이제 브랜드별로 어떤 제품이 좋은지 회사 여직원에게 추천해줄 정도다.
단순히 옷을 잘 입고 화장품을 사용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피부관리나 마사지, 경락성형, 눈썹문신 등 그동안 여성의 전유물이었던 분야로까지 진출하고 있다. 특히 40대가 직장에서 허리역할을 하는 세대인 만큼 안정적인 경제력을 바탕으로 과감하게 투자한다.
신한트렌드연구소가 작년 10~12월 상권별로 뷰티업종(경락·지압, 네일케어, 눈썹문신, 와익, 피부관리, 바디케어)에서 신한카드 사용액을 분석해보니 직장인이 많은 여의도에서는 남성 고객 비중이 31%로 많았지만 대학가인 홍익대와 역세권인 강남역에서는 각각 15%, 9%로 낮았다.
머릿수 제일 많은 40대 남성…소비비중 클 수밖에
‘장난감을 좋아하는 어른’을 의미하는 키덜트족이 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 향수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녀와 함꼐 놀면서 장난감 사다 보니 자연스럽게 키덜트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국내 키덜트 시장 규모가 2014년 5000억원대에서 이미 1조원대를 넘어선 것으로 추산했다.
40대 이상 남성들이 소비주체로 부상하는 것은 인구통계학상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40대 남성 인구는 425만명(8.51%)으로 가장 많다. 50대가 407만명(8.2%)로 뒤를 이었다.
일각에서는 지금 40대는 중년이라기보다 청년에 가깝다고 본다. 실제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인구의 중 정중앙에 있는 중위연령은 41.8세다. 1970년대는 20세 전후였고 1995년에는 30세 정도였던 것과 비교하면 지금의 40대는 중년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젊다는 것이다. 여전히 트렌드에 민감하며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은 얼리어댑터이기도 하다.
42세 회사원인 김 모씨는 “거리를 걷다가 누가 아저씨라고 부르면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된다”며 “나이로는 중년이라고 하지만 생활패턴이나 소비성향을 보면 아저씨가 됐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