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상 이 작품] 희극적 환상으로 풀어낸 역사의 상처

- 심사위원 리뷰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
동요 부르는 남북 병사들
현실·환상 오가며 휴머니즘 부각
  • 등록 2014-06-30 오전 7:37:49

    수정 2014-06-30 오전 7:37:49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의 한 장면.


[현수정 공연평론가]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이하 ‘여신님…’)는 창작뮤지컬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단계별로 개발된 성공 사례다. 이 작품은 2011년에 CJ 문화재단의 크리에이티브 마인즈를 통해 개발된 후 2012년 서울뮤지컬페스티벌의 예그린 앙코르에서 최우수작으로 선정됐다. 이후 소극장과 중극장을 거쳐 현재 두산아트센터의 연강홀(7월 27일까지)에서 성황리에 공연 중이다.

‘여신님…’은 한국전쟁과 분단 문제를 뮤지컬무대에 어울리는 ‘송 앤 댄스’의 환상을 통해 풀었다. 그 환상을 유발하는 존재는 제목에 등장하는 여신님이다. 가상의 존재인 여신은 인물들에게 사이코드라마의 빈 의자와 같은 치유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인물들은 그녀와 연인, 여동생, 노모 등을 동일시하며 못다한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이때 ‘꽃봉오리’ ‘원투쓰리포’ ‘꽃나무 위에’ ‘꿈결에 실어’ 등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서정적이고 민속적인 노래들이 불린다.

작품은 역사적 비극을 다루고 있지만 희극적인 환상을 통해 감동을 준다. 거친 병사들이 여신의 응시를 느끼며 행동을 조심하는 모습은 적잖은 웃음을 선사한다. 남·북 군사들이 동요처럼 맑은 노래를 합창하며 율동하는 천진한 모습은 성선설을 떠올리게 하며 이데올로기 대립의 무의미성을 역설한다.

그렇다고 전쟁과 분단의 아픔에 대한 묘사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특히 중요한 연기 공간인 무인도의 갈대밭은 조명에 따라 표정을 달리한다. 폭탄이 터지는 가운데 관절을 뒤틀고 발을 구르는 병사들의 낯선 모습이 다른 장면에서의 해맑은 모습과 대조되며 관객에게 충격을 준다. 총격이 벌어지는 가운데 자폐적인 순호를 움직이게 하기 위해 놀이를 가장하는 모습은 짙은 페이소스도 느끼게 한다. 일견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양 씩씩한 걸음으로 나치에게 끌려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처럼 서로 다른 환상의 대비는 오히려 전쟁의 참상을 통렬히 고발한다.

이번 연강홀로 오면서 무대가 더 정돈된 느낌이다. 다만 암전을 조금 줄이면 좀더 속도감과 집중력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울러 배우들의 캐릭터도 분명해졌다. 특히 이창섭은 잔인한 인민군에서 정감 있는 형으로의 변화를 큰 폭으로 보여줬고, 변주화는 남성적이지 못해 사회에서 배척당했던 타자성을 더욱 부각했다. 이런 캐릭터들은 극의 흐름에 있어서 완급을 조절하고 주제의식을 강조했다.

작품은 ‘누가 이길 것인가’가 아니라 ‘누구를 위해 싸워야 하는가’를 회의적으로 질문한다는 점에서 진일보해 있다. 새로운 시공간에서 군대와 제도의 이면에 억눌려 있던 아니마(남성의 무의식 속에 있는 여성적 요소)가 발현되며 이상적인 공동체를 이루는 모습은 휴머니즘을 일깨운다. 여신은 그 아니마를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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