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득음지설’ 공연에선 김홍신(왼쪽) 건국대 언론정보대학원 석좌교수의 해학 넘치는 해설과 함께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홍보가’ 예능보유자인 박송희 등 명창 5인의 판소리 ‘눈대목’을 감상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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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양승준 기자] “득음? 끝이 어딨어. 그 길로 가다 생이 끝나는 거지.”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예능보유자 신영희(72) 명창은 목을 다스리기 위해 똥물까지 마셨다. 열네 살 때다. 굴에 들어가 하도 소리를 내지르다 보니 목과 배 등에 피가 맺혀 이를 풀기 위해서다. 약이 없을 때 소리꾼들 사이 전해져 내려오는 민간요법이었다.
△신영희·성창순 등 5명 판소리 명창 총출연…‘400년’ 듣다
“새소리, 물소리, 천둥소리, 귀신소리도 다 내야 하는 게 판소리니까.” 신 명창의 말처럼 자연을 담는 게 득음이다. 이동백(1867~1950) 명창이 ‘새타령’을 뽑으면 새들이 진짜 자기네 소리인 줄 알고 화답했다는 건 소리꾼들에게 전설 같은 일화. “소리를 얻는 건 득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를 위해 신 명창도 60년 넘게 소리를 파고들었다. 길고 고된 길이다. “그래서 판소리는 옛날에 다 남자들이 했지.”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흥보가’ 예능보유자 박송희(87) 명창이 말을 거들었다.
한평생을 소리에 바친 명창들이 모였다. 신 명창과 박 명창을 비롯해 ‘심청가’ 예능보유자인 성창순(80), ‘수궁가’ 예능보유자 남해성(78), ‘적벽가’ 예능보유자인 송순섭(77) 명창 등이다. 이들이 오는 23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삼성동 민속극장 풍류에서 열리는 ‘득음지설’을 위해서다. 판소리 다섯마당 인간문화재(예능보유자) 5명이 모두 모여 벌인 판이다. 다섯 명창의 나이 합이 394세. 400년 세월을 머금은 명창들이 차린 잔칫상이다. 길게는 10시간에 이르는 전통 공연과 다르다. 다섯 명창은 하이라이트라 불리는 판소리 ‘눈대목’만 불러 쉽게 관객에게 다가갈 예정이다.
| 판소리 다섯마당 인간문화재(예능보유자) 5명인 박송희, 성창순, 송순섭, 남해성, 신영희 명창(사진 왼쪽부터=한국문화재보호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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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몽룡은 나쁜남자”…고전 비튼 해설가들의 해학
이번 공연에는 특별요리가 있다. 해설이 있는 판소리다. 고사성어나 한문이 많아 판소리의 이해가 어려웠던 게 사실. 명창들이 소리를 하고 나면 고전문학의 대가들이 쉬운 해설과 감상을 덧붙여 재미를 준다. ‘인간시장’으로 유명한 소설가 김홍신 건대 언론정보대학원 석좌교수가 ‘수궁가’(23일)와 ‘홍보가’(24일)를, 대학에서 ‘춘향전’만 20년 넘게 가르친 김현룡 건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가 ‘춘향가’(25일)에 농익은 해설로 살을 입힌다. 이정원 경기대 국문학과 교수는 ‘심청가’(26일)를, 김기형 고대 국문과 교수는 ‘적벽가’(27일)에 해설로 힘을 보탠다. 판소리와 고전문학의 낯선 만남이다. 김홍신 교수가 주축이 됐다. 3년 동안 ‘득음지설’ 해설에 나선 김홍신 교수는 “한 사람 목소리 안에 역사와 영혼이 들어 있다는 건 인류의 찬란한 문화유산”이라며 “이 황홀하고 소중한 소리를 공부하고 더 많은 분과 듣고 싶어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섯 해설가는 과거와 현대에 다리를 놔 고전을 비튼다. 새로운 해석이 흥미롭다. “대책 없이 아이만 10명 낳고 잘 살아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홍보는 현대적으로 보면 무능한 사내고 놀부는 적극적 경제인”이라는 식이다. ‘홍보가’ 해설을 맡은 김홍신 교수의 말이다. ‘춘향가’ 해설을 맡은 김현룡 교수는 “이몽룡이 과거에 급제했다 해도 내·외직을 다 거쳐야 해 바로 암행어사가 되는 건 천지가 개벽해도 안 되는 일”이라며 풍부한 역사지식을 바탕으로 고전 속 허점을 짚어 또 다른 재미를 줄 예정이다. “벼슬길에 올라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한 게 아니라 여자친구에게 먼저 달려간 것도 문제”란 지적엔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다. 어렵고 지루하게만 여겼던 판소리를 쉽고 재미있게 즐길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