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착한 전세와 나쁜 전세

  • 등록 2013-09-12 오전 7:20:00

    수정 2013-09-12 오전 7:20:00

조철현 사회부동산부 부장

전세(傳貰).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주택 임대차 제도다. 그래서 전세는 영어로도 ‘Jeonse’다. ‘김치(Kimchi)’나 ‘재벌(Chaebol)’처럼 영어로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서다.

우리나라 임대차 시장에서는 집을 비싸게 내놓으려는 주인과 싸게 빌리려는 세입자 간에 양보 없는 줄다리기가 벌어진다. 이 팽팽한 긴장 관계에서 그나마 둘 사이의 균형을 잡아준 게 전세였다. 집주인은 세입자에게서 목돈을 융통한 뒤 고수익 재테크에 투자할 수 있어 좋았고, 세입자는 상대적으로 싼 주거비용으로 일정 기간 집을 빌려 쓸 수 있어 좋았다. 나아가 세입자는 전세 보증금에 일부만 보태면 내 집 마련에다 잘하면 시세 차익까지 누렸다.

그랬던 ‘착한’ 전세가 지금은 골칫덩어리 취급을 받고 있다. 전셋값 급등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8.28 전월세 대책’ 이후에도 전셋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이 기세라면 전용면적 85㎡(32평) 10억원 전세시대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서울 반포동 래미안 퍼스티즈 아파트 전용 85㎡ 전세금이 얼마 전 9억5000만원으로 사상 최고점을 찍었다. 최근 몇 년째 하락 추세인 집값과는 반대로 전셋값은 그야말로 폭등 수준이다. 집값 상승 기대감이 없어지면서 집을 장만할 여유가 있는 계층도 집을 사기보다는 전세로 눌러앉고 있기 때문이다.

주택 담보 대출금과 전세 보증금을 합쳐 집값의 70%를 넘는 이른바 ‘깡통전세’가 서울·수도권에만 20만 가구를 헤아린다. 광주광역시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전셋값이 집값을 웃도는 기현상까지 벌어졌다.

문제는 이렇게 오른 전셋값을 주고도 전세를 제대로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수천가구의 대단지에서도 전세 물건은 10건도 안된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4년째 진행되고 있는 전세난이 앞으로도 8년은 더 지속될 전망이다.

집값 급등은 무주택 서민층에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지만 전셋값 폭등은 아예 생존권 자체를 위협한다. 주거 안정이 국민 생활에 직결되는 민생 중의 민생인 이유다.

상품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전세 주택이라는 상품도 마찬가지다. 다른 지역으로 전근 또는 일시적인 해외 이주 등으로 자기 집을 전세로 내놓는 경우를 제외하면 전세 주택 공급자는 대부분 다주택 보유자다. 치솟는 전세금을 잡는 최고의 해법은 더 많은 전셋집을 내놓는 것밖에 없다. 기존 주택 보유자들이 추가로 주택을 구매해 전세시장에 내놓아야 전셋값도 안정을 찾는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다주택자를 겨냥해 만든 양도세 중과와 종합부동산세 등 징벌적 과세 체계는 아직 견고하다.

‘집 가진 사람은 부자, 집 없는 사람은 서민’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이제 수정돼야 한다. 집으로 재산을 늘리는 시기는 지났는데도 다주택자에게 징벌적 세금을 매기는 오류도 바로 잡혀야 한다.

벌써 몇 년째 부동산시장 활성화 관련 법안 하나 통과시키지 못하는 것은 정부의 무능이다. 정치권은 더 반성해야 한다. 전세난에 고통받고 있는 ‘렌트 푸어’는 바로 새누리당이 재건하겠다는 중산층 아닌가. 또 이들이 바로 민주당이 앞장서서 지키겠다는 ‘을(乙)’이 아니고 누구인가.

얼마 전 한 국회의원은 “여야가 하루빨리 정치적 논리가 아닌 정책적 측면에서 부동산 문제를 풀지 않으면 거래시장의 신뢰 회복과 전세시장 안정은 요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를 모든 게 거덜 난 지금에 알았다니 서민들만 딱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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