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지금 정부는 물가와 전쟁 중이다. 주요품목에 대해서는 빵 서기관, 커피 사무관처럼 담당자를 직접 지정해 집중관리에 들어갔을 정도다. 이명박 정부 때 했던 물가지정관리제의 부활이다. 민간기업의 자율성을 강조해온 윤석열 정부가 ‘가격을 통제한다’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이를 도입한 데는 물가관리의 절박함 때문일 것이다.
| 지난달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라면 제품들이 진열돼 있다. (사진 =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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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은 물가와 함께 요새 가장 눈총을 받는 곳은 식품기업들이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최근 자료를 통해 빵, 과자, 라면 등의 주요 원재료인 밀가루(소맥분)와 팜유 등 원재료 수입가격이 떨어졌음에도 식품기업이 반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라면3사(농심·오뚜기·삼양)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3153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약 60%나 늘었다. 또 국내 주요 제과 3사(롯데웰푸드·오리온홀딩스·크라운해태홀딩스)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2817억원)도 전년동기대비 29.5% 증가했다. 원재료값 상승으로 어쩔 수 없이 제품 가격을 올렸다는 해명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수치다. 그리드플레이션(greed+inflation, 기업의 욕심에 따른 물가 상승)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기업의 목적이 이윤 극대화인 것은 맞다. 하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상생을 강조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화두인 지금, 국민의 고금리·고물가 고통을 외면하고 기업만 잘 나가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윤 대통령이 은행의 ‘이자장사’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횡재세 논란으로 번진 후에야 부랴부랴 상생 대책을 내놓는 금융권의 모습도 ESG 경영과는 꽤나 거리가 멀다.
작년 법인세율 인하를 강력하게 추진했던 정부·여당은 1%포인트만을 낮추는 데 그쳤다. 거대 야당의 반대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 기업에 대한 국민의 지지·신뢰와 직결돼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법인세 인하가 국민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당장 세수가 덜 걷힐 수 있어도, 세(稅) 부담이 낮아진 기업의 활동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낙수효과’로 이어진다는 믿음이 있어야 할 테다. 법인세 인하가 결국 국민 모두의 이익이라는 공감대만 있었다면 단언컨대 야당도 감히 반대하지 못했을 것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2대 국회에서 법인세 인하를 관철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리드플레이션, 슈링크플레이션(shrink+inflation·가격을 유지하면서 제품 크기나 중량 축소), 이자장사 등 상생과 거리가 먼 단어들이 심심치 않게 오르내리는 지금, 법인세 인하는 요원해 보인다. 오히려 과표구간을 단순화해 최고세율 적용 기업을 대폭 늘리려는 거대 야당의 주장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것 같다는 우려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