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아직 공연 볼 준비가 안 된 것 같은데. 3층에 있는 관객들, 환호를 해주세요.”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뮤지컬 ‘웃는 남자’에서 우르수스 역을 맡은 배우 양준모가 특유의 중저음으로 객석을 향해 외쳤다. 극 중 유랑극단이 공연을 앞둔 장면. 극장 안이 오랜만에 관객 환호로 가득 찼다.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자 관객이 그토록 기다렸던 주인공이 마침내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양쪽으로 찢어진 입으로 기묘한 웃음을 짓고 있는 그윈플렌, 4년 만에 뮤지컬로 돌아온 가수 박효신이다.
| 뮤지컬 ‘웃는 남자’의 한 장면. (사진=EMK뮤지컬컴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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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K뮤지컬컴퍼니의 창작뮤지컬 ‘웃는 남자’가 지난 10일 이곳에서 개막했다. 빅토르 위고의 동명소설을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 작사가 잭 머피가 무대로 옮긴 작품이다. 신분 차별이 극심했던 17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끔찍한 괴물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순수한 내면을 지닌 그윈플렌의 이야기를 그린다.
박효신은 2018년 ‘웃는 남자’ 초연에서 주인공 그윈플렌 역을 맡아 작품의 흥행을 견인했다. 2019년 재연에는 출연하지 않았던 그가 이번 세 번째 시즌 공연 출연을 확정하자 관객들은 높은 기대감을 나타냈다. 티켓 또한 일찌감치 전석 매진. 이날 공연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3000석을 관객이 가득 채워 팬데믹 이전과 같은 열기를 보였다.
공연 시작 전 박효신이 직접 녹음한 공연 안내 멘트부터 객석에서 박수가 쏟아질 정도로 관객 반응은 대단했다. 박효신은 4년 만의 뮤지컬 복귀가 무색할 정도로 그윈플렌 역에 녹아들었다. 1막 유랑극단 공연 장면에선 초연 때보다 더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선보이며 웃음을 자아냈다. 그윈플렌이 자신의 신분을 알게 된 뒤 벌어지는 2막에선 가난한 자를 외면하는 부자들의 모습을 보며 겪는 그윈플렌의 고뇌를 변함없는 가창력으로 열연해 박수를 이끌어냈다.
| 뮤지컬 ‘웃는 남자’ 그윈플렌 역 배우 박효신 캐릭터 포스터. (사진=EMK뮤지컬컴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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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웃는 남자’ 세 번째 시즌 공연의 또 다른 관람 포인트는 바로 공연장의 변화다. 정식 공연장 중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으로 무대를 옮기면서 공연 또한 전보다 더 화려하고 압도적으로 변모했다. 그 백미는 2막의 절정인 여왕과 상원의원들이 법안을 논의하는 장면. 타원형의 무대 세트가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며 부자들의 탐욕과 허영을 더 생생하게 느껴지게 한다.
박효신 외의 다른 배우들도 열연을 펼치며 작품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그윈플렌과 데아를 데려다 키우는 우르수스 역의 양준모는 힘든 삶 속에서도 묵묵히 이들을 돌보는 모습으로 진한 부성애를 전했다. 조시아나 여공작 역의 김소향은 ‘내 삶을 살아가’를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부르며 객석을 압도했다. 데아 역으로 첫 대극장 뮤지컬 주연에 나선 신예 유소리도 청량한 목소리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웃는 남자’의 흥행 비결은 무엇보다 탄탄한 스토리와 공감 가는 주제에 있다. 웃을 땐 같이 웃고, 힘들 땐 같이 눈물을 닦아주는 가난한 이들과 돈을 위해서라면 범죄도 마다하지 않는 부자들의 대비된 모습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이다.” 초연부터 관객의 마음을 움직였던 작품 속 명대사는 공정이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2022년에도 여전히 힘을 발휘한다. 부자들을 향해 “눈을 뜨라”는 그윈플렌의 외침은 평범한 이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박효신 외에 박강현, 박은태가 그윈플렌 역을 맡았다. 민영기(우르수스 역), 신영숙(조시아나 여공작 역), 이수빈(데아 역) 등도 함께 출연한다. 공연은 오는 8월 22일까지.
| 뮤지컬 ‘웃는 남자’의 한 장면. (사진=EMK뮤지컬컴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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