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작가 다니엘 보이드(39)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소개한다. 그의 작품은 알록달록한 무늬 사이에 진짜 그림이나 글씨가 숨어 있는 ‘매직아이’처럼 수많은 점들로 구성돼 있다. 가까이서 바라보면 각각 점들이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다. 멀리서 작품을 바라볼 때 비로소 그 실체가 드러나는데, 영국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보물섬’에 등장하는 보물 지도, 영화 ‘바운티호의 반란’의 포스터, 꽃 무늬 접시 등 다양한 이미지가 숨어 있다. 색색의 이미지들이 마냥 아름답게만 느껴지지만 사실 각 대상들은 호주 원주민의 역사를 깊이 고찰해 온 작가의 시선과 정체성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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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전시 제목을 따온 소설 ‘보물섬’에 큰 영감을 받은 작가는 소설 속 소재를 활용해 오랫동안 호주 역사의 영웅으로 추앙받아온 제임스 쿡 선장을 ‘해적’으로 표현한다. 제임스 쿡은 영국의 탐험가로 호주에 발을 디딘 첫 유럽인으로 꼽힌다. 서구에서 보기에 그는 호주를 점령한 영웅이지만, 원주민들에게는 삶의 터전을 빼앗아간 침략자다. 작가의 초창기 작업인 ‘노 비어드’(No Beard·2005~2009) 연작 시리즈에 이런 작가의 시각이 잘 드러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보물섬’ 속 등장하는 지도를 그린 ‘무제(TIM)’과 스티븐슨의 초상화 ‘무제(FAEORIR)’가 있다. 마찬가지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바운티호의 반란’ 포스터 이미지를 그린 ‘무제(POMOTB)’는 대중문화에 드러난 서구의 시각을 작가만의 방식으로 재현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영상 작품도 처음 선보인다. 수많은 움직이는 점들로 이뤄진 영상 작품은 회화 작품의 연장선이다. 빛, 우주, 어둠을 주제로 한 영상은 밤하늘의 별, 우주 속 입자 등을 표현했다. 별이나 입자처럼 세상의 근원이 되는 것들이 끊임없이 움직이듯 우리의 역사도 시대 흐름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한다는 것을 영상에서 은유적으로 담아낸 것이다. 그의 모든 회화작품은 무제인 반면 영상은 유일하게 ‘강’(river)이라는 작품명이 있다.
윤혜정 국제갤러리 이사는 “이번 전시는 작가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 공동체와 땅의 기억을 자각하고 공유함으로써 호주라는 특수한 역사를 초월해 작가의 작업에 보편성을 더한다”며 “역사적 서술, 인류의 집단적 지성이라는 기존 관념에 끊임없이 반문해온 작가의 작업 세계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8월 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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