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올로 조르다노(사진) 작가는 지난 8일(현지시간)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누군가 만약 3개월 전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면 나는 비웃었을 것”이라면서 “정말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일어났다”라고 덧붙였다.
조르다노 작가는 2008년 25살의 나이에 발표한 첫 소설 ‘소수의 고독’으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 스트레가상과 캄피엘로상을 수상한 유명 작가다. 토리노 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과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 3월 말부터 이탈리아 전역에 봉쇄령이 내려지자 집에 갇혀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했는데, 이 시기 스스로 성찰했던 기록을 모아 신간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를 발간했다.
이탈리아 4일부터 경제재개…일상으로의 복귀는 멀어
이탈리아는 유럽에서도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10일(현지시간) 기준 이탈리아의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3만560명으로 집계됐다.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숫자다. 조르다노 작가는 실제 사망자 수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면서, 이탈리아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 큰 피해를 입은 원인을 앞으로 자세히 연구해야 할 과제로 지목했다.
우선 이탈리아에서 먼저 피해가 큰 지역은 롬바르디아, 피에몬테, 베네토, 에밀리아 로마냐 등 대표적인 제조업 지역이다. 이 지역은 중국과 밀접한 비즈니스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인구 밀도가 높고 공장들이 모여 있는 탓에 대기 질도 상대적으로 나쁘다. 그는 이같은 환경이 바이러스 확산에 기여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여기에 롬바르디아 등에서는 최근 수년간 지역 의료시스템이 취약해졌다. 실제 이들 지방 중소병원에서는 원내 감염이 발생하면서 오히려 코로나19의 온상이 됐다. 유럽 내에서 가장 고령화 비율이 높고 사람들이 활동성이 높은 것 역시 이탈리아의 특성 역시 사망률이 높은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파올로는 집에서 사망한 고령자들은 코로나19 사망자 집계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실제 사망자 수는 훨씬 더 높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조르다노 작가는 “우리는 한국과 달리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를 겪지 않았다”며 “전염병에 대한 준비는 물론 그 대응방식 역시 한국보다 훨씬 효율성이 부족했다”고 돌이켰다.
伊 4일부터 경제재개 완화…“일상으로의 복귀는 아직 먼 일”
유럽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이탈리아는 지난 4일부터 봉쇄 조치를 완화하고 단계적인 경제 활동 재개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것이 일상으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조르다노 작가는 “산책은 한 사람씩 가야 하고 같은 지역에 있는 이웃의 집에만 방문할 수 있다”며 “나는 로마에 살고 우리 부모님은 북쪽(이탈리아 코로나19 피해는 북쪽 지역에 집중됐다)에 살고 있기 때문에 아직 뵐 수 없다. 모임도 저녁식사도 아직은 안 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은 어떨까.
다만 그 방식에 대해서는 유럽연합(EU)이 제시한 추적 애플리케이션 관련 지침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EU 집행위원회는 회원국들에 사용자가 자발적으로 다운로드하고 필요하지 않을 경우 제거할 수 있는 추적 앱을 개발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그 앱은 위치정보시스템(GPS) 같이 휴대전화의 물리적인 위치를 추적하기보다는 사용자 간 근접성을 측정하는 단거리 전파를 이용하는 시스템을 기반으로 할 것을 주문했다.
이탈리아인이자 EU의 일원으로서 그가 보는 ‘하나의 유럽’은 지속 가능한 것일까.
조르다노 작가는 자신을 “국경이 없는 것을 즐긴 첫 번째 세대”라면서도 “어쩌면 이제 그것은 단지 꿈일지도 모른다”고 자조했다. 그는 이어 “유럽은 경제적 시험은 통과할 수 있을지 몰라도 통합에는 실패했다”며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보여준 EU의 모습은 하나의 유럽이라는 당초 목표에 못 미쳤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런 국면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더욱 큰 협력이라고 강조한다. 조르다노 작가는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은 오늘 우리가 무엇을 준비하느냐에 달려있다”며 “전 세계 각국 정부가 매일 내리는 극적인 결정은 코로나19가 지나간 뒤에도 오래도록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