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신상에 큰 변화가 있었다. 27년간의 검사 생활을 마치고 올해 1월 퇴직했다. 임관 전 사법연수생으로 지낸 2년까지 합하면 30년 가까운 세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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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확산은 신상 변동 후의 새로운 생활에서 당연하게 기대하던 범사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학교와 학원에 가지 않고 하루 종일 집에 머무르는 아이들의 하루 세끼를 꼬박 챙겨 먹이자니 다른 일을 할 겨를이 없어졌다. 아직 공직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해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한동안 외부 약속과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다. 얼마 전 동네 양재천 가에 문을 연 구립 도서관을 포함해 모든 공공 도서관이 문을 닫았다. 고전 공부 모임은 시작도 하지 못한 채 계속 연기됐다. 주로 이용하는 지하철 3호선이 종종 코로나19 확진자의 동선에 포함되곤 하니, 책상 한 자리를 얻어놓은 인사동의 선배 사무실조차 다니지 못하는 형편이다.
코로나19와 무관하게 범사의 소중함을 절감하는 일도 생긴다. 몇 년 전 두 딸의 성화를 감당하지 못해 집에서 키우게 된 강아지가 한창인 나이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다리를 절룩이더니 뒷다리에 마비 증상이 왔다. 동물병원에서는 당장 디스크 수술을 받지 않으면 영영 걸을 수 없게 되고 수술을 받더라도 다시 걷게 될 확률이 절반 정도라고 한다.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결과가 꼭 희망적이지도 않은 수술을 받게 하는 것이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매우 어리석은 일이리라. ‘찰떡이’라는 이름으로 다정하게 부르며 가족의 일원으로 여기는 두 딸의 간절한 소망을 외면하면 모녀 사이 두고두고 악영향을 미칠 것을 염려해 결국 수술을 받게 했다. 이제는 그저 수술 경과가 좋아서 찰떡이가 다시 걸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기다리는 중이다. 범사 중의 범사가 이렇게 중요한 일이 될 줄이야.
그 사이에 집 밖은 코로나19를 전혀 걱정하지 않는 진달래와 개나리, 이어지는 벚꽃과 목련을 넘어 철쭉과 라일락의 계절이 된 듯하다. 매년 다시 찾아주는 꽃과 신록이라는 범사를 찬미함은 물론 낙엽과 나무 자체의 쓰러짐도 소중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면 이 세상은 훨씬 더 살만하다고 느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