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탄생 100주년]④미완으로 남긴 꿈

시베리아 자원 개발, 남·북·러 경제협력
  • 등록 2015-11-24 오전 4:30:00

    수정 2015-11-24 오전 4:30:00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일평생 건설·중공업·자동차 등 많은 사업을 일으켰다. 그러나 살아 생전 못 다 이룬 꿈도 있다.‘아이디어맨’이던 그는 말년까지 정력적으로 신사업 개발에 몰두했다. 그의 사후 일부는 계승됐지만 나머지는 아직도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시베리아 개발 사업이다. 정주영은 1989년 금강산 개발로 남북 교류의 물꼬를 튼 데 이어 아직 한국과 정식으로 수교를 맺지 않은 러시아를 방문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만나 블라디보스토크를 둘러봤다. 시베리아 개발을 향한 첫 행보였다.

그는 러시아 시베리아 개발을 통해 목재와 천연가스, 기름, 석탄 등 자원의 창구로 활용하려 계획했다. 중동을 개발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 곳을 개발하려 했다.

또 다른 목적도 있었다. 시베리아 개발은 곧 시베리아와 인접한 북한과의 경제 협력이 필수적이었다. 그는 외교는 곧 경제 협력이라며 이를 통해 북한도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었고, 금강산관광 개발과 함께 러시아~북한~한국을 잇는 가스 파이프라인의 설치를 꾀했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오른쪽)이 생애 말년인 2000년 5차 방북에서 돌아온 판문점에서 차남 정몽구 현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부축을 받으며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아산정주영닷컴
하지만 이는 미완에 그쳤다. 이를 구상한 지 3년 뒤 그는 대선에 낙선했고, 그 후 5년 동안 공식적인 대외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가 대북사업에 나선 1996년, 그의 나이는 이미 81세였다.

이후 범 현대그룹은 뿔뿔히 흩어졌고, 시베리아 개발 사업 역시 묻혀 버리고 말았다. 현재 시베리아는 한국은 한 발 물러선 가운데 북미·유럽·일본의 자원 쟁탈전이 한창이다.

대북 사업 또한 현대그룹이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등으로 그 명맥을 잇고 있지만 냉각된 남북관계에 발목이 잡혀있다. 대북사업은 정 명예회장 사후 현대그룹의 대북 로비자금 조사, 북한 핵실험, 금강산 관광객 피격, 천안함 침몰 등 사건 등 크고 작은 풍파를 겪었고 지금까지도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 회장의 대북사업 유지를 이어오던 현대그룹은 주력 계열사인 해운·상선사업의 극심한 불경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 하지만 그가 조금만 일찍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면, 조금만 더 시간을 들일 수 있었다면 현재 동북아 정세가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그의 사후 묻혀 버린 사업과 아이디어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는 평소 즉흥적으로 사업 아이디어를 내고 주위 사람에게 의견을 묻곤 했다.

그는 말년에 위 두 사업 외에도 통신사업, 서해안공단 조성사업 등에도 관심을 가지고 지인들에 의견을 묻곤 했다. 서산 간척 사업에서 영감을 얻어 티그리스강 유역(이라크)의 농경지 개발 사업도 구체적으로 논의했다. 하지만 이는 모두 ‘미완의 사업’으로 남았다.

북한을 찾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왼쪽 2번째)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가운데)과 고(故) 정몽헌 현대그룹 전 회장 등과 함께 기념촬영하고 있다. 아산정주영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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