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대표적인 것이 시베리아 개발 사업이다. 정주영은 1989년 금강산 개발로 남북 교류의 물꼬를 튼 데 이어 아직 한국과 정식으로 수교를 맺지 않은 러시아를 방문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만나 블라디보스토크를 둘러봤다. 시베리아 개발을 향한 첫 행보였다.
그는 러시아 시베리아 개발을 통해 목재와 천연가스, 기름, 석탄 등 자원의 창구로 활용하려 계획했다. 중동을 개발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 곳을 개발하려 했다.
또 다른 목적도 있었다. 시베리아 개발은 곧 시베리아와 인접한 북한과의 경제 협력이 필수적이었다. 그는 외교는 곧 경제 협력이라며 이를 통해 북한도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었고, 금강산관광 개발과 함께 러시아~북한~한국을 잇는 가스 파이프라인의 설치를 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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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 회장의 대북사업 유지를 이어오던 현대그룹은 주력 계열사인 해운·상선사업의 극심한 불경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 하지만 그가 조금만 일찍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면, 조금만 더 시간을 들일 수 있었다면 현재 동북아 정세가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그의 사후 묻혀 버린 사업과 아이디어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는 평소 즉흥적으로 사업 아이디어를 내고 주위 사람에게 의견을 묻곤 했다.
그는 말년에 위 두 사업 외에도 통신사업, 서해안공단 조성사업 등에도 관심을 가지고 지인들에 의견을 묻곤 했다. 서산 간척 사업에서 영감을 얻어 티그리스강 유역(이라크)의 농경지 개발 사업도 구체적으로 논의했다. 하지만 이는 모두 ‘미완의 사업’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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