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주부들..남편 회사가면 곗돈 찾아서..

오락실로 ‘출근’
도박중독자 300만명시대… 주부들이 위험하다
심심해서… 우울해서… 가볍게 시작
나중엔 카드빚·곗돈 들고 원정다녀
  • 등록 2006-08-28 오전 8:12:21

    수정 2006-08-28 오전 9:10:54

[조선일보 제공] ‘도박 게이트’는 평범한 사람들을 파멸시켰다. 골목마다 합법의 간판을 달고 등장한 성인오락실. 산뜻한 외관에 화려한 애니메이션 장식은 보통사람을 유혹했다. 남편을 출근시킨 주부, 한 잔 걸친 샐러리맨, 독서실에 다니는 학생들이 호기심에 문을 열었고, 빠른 속도로 망가졌다. 도박중독자 수 300여만명(국가정보원 보고서). 18세 이상 성인 10명 중 한 명꼴이다. 세계에 유례가 없는 도박기계를 주택가 골목길로 끌어들인 ‘전국의 도박장화’는 건전한 시민을 파괴했다. 경계 없이 들어선 도박장은 건실한 생활인과 도박중독자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말았다.

“도박에 손댄 이후 모든 게 망가졌어요.”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주부 김모(53)씨. 김씨는 현재 이혼소송 중이다. 평범한 주부 김씨는 2년 만에 도박중독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2004년,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성인오락실 ‘오션 파라다이스’. 우연히 재미 삼아 들른 게 시작이었다. 처음엔 낮 시간을 이용해 몇 만원씩 베팅하는 수준이었다. 점점 빠져들었다. 밤에도 성인오락실 불빛이 생각났다. “나중엔 남편이 잘 때 밤에 몰래 빠져 나와 몇 판씩 하고 들어갔지요.”

두 달 만에 빚 3000만원을 졌다. 그걸 덮으려다 사채를 2000여만원 끌어다 썼다. 뒤늦게 사실을 안 남편은 주먹까지 휘둘렀다. 김씨는 얻어맞고도 밤에는 어김없이 오락실로 갔다. “남편은 제가 도박하러 다니는 사진을 몰래 찍었어요. ‘중독’이라는 걸 입증하고 이혼도장을 찍겠다는 거죠. 자식들이 알까 봐 제일 두려워요.” 김씨는 뒤늦게 후회하고 있다.

지난 1월 한국관광정책연구원 조사 자료. 국내 도박중독자 가운데 17%가 주부였다. 한국도박중독예방치유센터 강성군 전문상담원은 “경마나 경륜에 비해 성인오락실은 언제든 열려있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며 “경마 등 다른 게임은 자영업자나 무직자가 많이 하지만, 성인오락실은 주부나 학생, 20·30대 등으로 이용자층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23일 서울 중곡동 성인오락실에서 만난 주부 이모(28)씨. 결혼한 지 4개월밖에 안 된 새댁이다. 회사원인 남편이 출근할 때 뒤따라 외출해 퇴근할 때까지 오락실을 전전하고 있다. “결혼 전부터 성인오락실 다니는 걸 좋아했어요. 그것 때문에 카드 빚이 꽤 있었는데, 퇴직금으로 메우고 결혼했거든요. 근데 요즘 다시 카드 빚을 지고 있어요.”

지난달에도 현금서비스로 100만원을 찾았다는 이씨. “두렵지만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요즘은 근처 오락실도 문을 닫아 갈 곳이 마땅치 않아요. 먼 곳까지 원정가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면서 그는 취재 기자에게 한마디 했다. “그만큼 중독성이 있으니까 이런 데 얼씬거리지 마세요.”


▲ 골목마다 성인오락실이 들어서면서, 주부들이 도박중독자로 전락하는 사례가 적잖게 나오고 있다. 최근 ‘도박 게이트’가 터진 이후, 낮 시간에 들른 서울의 한 ‘바다이야기’ 게임장에서도 주부들의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 노원구 당고개 근처 ‘바다이야기’에서 만난 주부 채모(46)씨. 친구 7명과 함께 왔다고 했다. 모두 중계동 은행사거리, 상계3동, 공릉동에 사는 주부들. 낮 시간을 이용해 자주 들른다고 했다. “여기 오려고 석 달 동안 계를 부어서 100만원을 들고 왔어요. 예전에 날린 돈이 아깝기도 하고…주변에선 50만~100만원씩 들고 와서 따던데.”

이들 중 가장 연장자인 주부 박모(60·노원구 공릉동)씨는 6개월 전부터 거의 매일 출근도장을 찍고 있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메달이 떨어져 내리는 게 천장 위로 아른거려.”

도박중독은 재발률이 높다. 50대 중반의 주부 이모씨의 사례다. 2003년쯤 ‘하우스’(도박업장) 도박에 빠져 6000만원의 빚을 졌다. 그는 가족들의 소개로 도박중독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이씨는 1년 전 다시 ‘바다이야기’에 중독됐고, 빚은 1억원으로 늘었다. 안타까운 가족들이 다시 병원에 들러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묻고 있다.

강북삼성병원 도박중독클리닉 신영철 교수는 “남성들은 승부욕 때문에 도박자체를 즐기는 데 반해 여성들은 우울하거나 현실도피 등 정서적인 이유로 도박에 많이 빠진다”며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일단 발병하면 빠져 나오기 어려운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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