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찬일 영화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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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찬일 영화평론가] 요즘 들어 부쩍 한국영화의 위기에 대한 우려들이 쇄도하고 있다. 오죽하면 ‘해운대’(2009)와 ‘국제시장’(2014)의 쌍 천만 감독이요, CJ ENM 스튜디오스 대표인 윤제균 한국영화감독조합 공동대표가 “내년 하반기부터는 아마 극장에 과연 한국영화가 한 달에 몇 개가 나올지, 과연 나오기는 나올지, 내후년은 어떻게 될지 좀 되게 암담한 상황”이라는 충격적 진단까지 내렸겠는가.
한국영화가 극장에서 살아남으려면 고질적 문제인 스타 캐스팅이나 물량 공세에 대한 집착적 관행부터 당장 지양해야 한다. 그간 ‘크게 판을 벌여 최대한 신속하게 큰돈을 벌고 빠지자’는 한탕주의적 관행이 영화계를 주도해왔다. 칼자루를 쥔 투자사들이 그러니 제작사들 대부분이 순응하기 급급했다. 뒤질새라 스타 모시기에 여념이 없었고 이들의 몸값이 치솟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이 땅의 (대중) 관객들은 유명 스타가 출연한다고 무턱대고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는 것은 이미 공공연히 입증돼왔다. 출연진의 면면이 중요하긴 해도 말이다.
지난해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이 출연한 ‘비상선언’(한재림 감독)이나 류준열, 김우빈, 김태리, 소지섭, 염정아, 조우진이 참여한 ‘외계+인 1부’(최동훈) 등도 참패했으나, 그래도 200만과 150만 선은 넘었으니 체면치레는 한 셈이다. 당장 떠오르는 예는 코로나 참사 이전에 개봉한 ‘나랏말싸미’(2019, 감독 조철현)다. 우리 역사의 으뜸 영웅 중 한 명인 세종대왕 관련 이야기에 송강호, 박해일 투톱이 기용됐건만 95만 명에 그쳤다. 올 초 개봉한 설경구, 이하늬, 박소담, 박해수 주연의 ‘유령’(감독 이해영)부터 주지훈, 박성웅 주연의 ‘젠틀맨’(감독 김경원), 권상우, 오정세, 이민정 주연의 ‘스위치’(감독 마대윤), 조진웅, 이성민, 김무열 주연의 ‘대외비’(감독 이원태) 등 최근 선보인 일련의 한국 상업 영화의 흥행 성적표에 눈길을 던지면, 100만 선조차 요원해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물량 공세 역시 매한가지다. 아는가? 1626만 명으로 1761만 명의 ‘명량’(2014, 감독 김한민)에 이어 대한민국 흥행 역대 2위를 기록 중인 ‘극한직업’(2019, 감독 이병헌)의 순제작비와 총제작비가 65억 원과 95억 원에 불과했다는 것을? 이 영화는 해외 및 2차 부가판권 시장 수익을 빼고도 제작비의 15배 이상을 벌어들였다. 매출액 기준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큰돈을 벌었단다. 중간 규모 예산에, 류승룡을 제외하고 캐스팅 1순위 스타들이 아니었는데도 기념비적 성공을 일궈냈다. 감독 이병헌은 ‘극한직업’ 이전까지 흥행과는 거리가 먼 미래의 감독이었다. ‘노 리스크 노 리턴’이란 명제가 역설하듯, ‘극한직업’은 결국 모험적 기획의 승리였던 셈이다. 개인적 호감 여부를 떠나, 지금 이 순간 ‘극한직업’을 벤치마킹하라고 강변하고 싶은 것은 그래서다.
모험의 범위가 투자, 제작 측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극장도 좀 더 다양한 모험적 영화들에 하나라도 더 많은 스크린을 내주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시간에 오래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을 배려해야 한다. 지난 1월 개봉해 국내 개봉 일본 영화 사상 역대 흥행 1위를 쓴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감독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기록을 지난 3월 개봉한 또 한 편의 재패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감독 신카이 마코토)이 불과 40일 만에 추월, 450만 명에 가까운 관객들을 동원하며 신기록을 경신한 것도 이와 상통한다.
정책적 방향도 마찬가지다. 눈앞의 성과가 아닌 미래를 향한 발굴 및 지원에 무게중심을 이동해야 한다. 관객들도 자국 영화를 향한 예의와 관심, 애정을 회복할 필요가 있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