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중고차 수출' 송도 가보니..성능점검기록부 없는 먼지 쌓인 차만 가득

<韓 중고차 수출 현주소는>
대면 판매 구조인데 기반 시설·거래 시스템 등 미흡
중고차 지난해 약 47만대 수출…전년比 26%↑
코로나 사태 후 고운임·선박 부족 시달려
"낙후된 시스템 개선해 수출 효자로 탈바꿈시켜야"
  • 등록 2022-12-03 오전 8:30:00

    수정 2022-12-03 오전 8:30:00

[사진·글=이데일리 손의연 신민준 기자] “수출 중고차의 90% 정도가 인천항에서 출항한다. 하지만 열악한 기반 시설 등을 봤을 때 수출을 담당하는 곳이라고 믿기지 않을 것이다.”

인천 송도유원지 중고차 수출단지 (사진=손의연기자)
최근 인천광역시 송도유원지에 조성된 중고차 수출단지에서 만난 한 수출 중고차업체 대표의 하소연이다. 송도유원지에는 중고차 수출업체 약 1000개가 모여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수출중고차 업체는 내수 매매상사와 달리 일정 규모의 주차시설을 갖추는 등의 허가 조건이 없고 진입 장벽이 낮은 관계로 설립과 폐업이 쉽기 때문이다.

영세한 수출 중고차업체…“야적장서 차량 절도도 발생”

송도유원지를 비롯한 우리나라 중고차 수출업체들의 규모는 대부분 영세하다. 이는 초창기 중고차 수출 1세대들이 운영하던 업체의 직원이거나 지인을 통해 중고차 수출 사업을 시작한 업체들로 적은 자본으로 시작하게 되는 경우가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중고차 수출은 송도유원지 야적장 등을 방문하는 해외 중개인(구매자)들에게 소량의 차량을 직접 대면해 판매하는 일종의 마당장사 방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재고 등에 대한 부담이 큰 관계로 영세한 소규모 사업의 형태가 지속되고 있다.

과거 AJ·대우자동차판매 등의 일부 대기업이 중고차 수출시장에 진출한 적이 있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났다. 대기업의 경우 영세한 업체들과 달리 차량 매입과 매출 비용의 투명성이 강조되는 만큼 차량 매입 가격이나 경로가 영세 업체들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 탓이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규모 중고차 수출단지인 송도유원지는 야적장에 중고차를 전시해 놓고 해외 중개인들에게 판매하는 방식으로 중고차 수출이 이뤄지고 있다. 차량들이 주차돼 있는 나대지 규모는 매우 넓었지만 제대로 된 시설을 갖춘 사무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중고차 수출업체들은 컨테이너나 폐차한 버스를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었고 야적장 내 도로도 비포장 도로였다. 옛 송도유원지를 중심으로 이뤄진 약 12만~13만평의 수출야적장 토지의 대부분이 토지이용에 제한이 있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한 중고차 수출업체 관계자는 “단지에 화장실이 한 곳인데 해외 중개인들이 오면 민망하다. 여성 직원들도 많은데 불편함을 호소한다”며 “도로가 제대로 정비돼 있지 않고 CCTV 체계도 허술해 밤에 몰래 차량을 훔쳐가는 등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중고차 수출 규모는 연간 40만대를 웃돌며 금액 기준으로는 1조원대 규모지만 이런 규모가 무색하게 현장 시설과 거래 시스템은 매우 낙후됐다. 중고차 수출업체들은 현대화된 시설과 체계화된 거래 시스템 마련된다면 수출 중고차시장은 현재보다 최소 2~3배 가량은 더 성장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와 인천항만공사(IPA) 등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항만에서 수출된 중고차는 46만6202대에 달한다. 국내 중고차 거래 대수가 약 380만대인 점과 비교하면 중고차 12대 중 1대 수출되는 셈이다.

중고차 수출량은 2017년 28만6409대, 2018년 36만59대, 2019년 46만9316대로 매년 증가하다가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영향이 컸던 2020년 38만6201대로 감소했다. 수출 중고차 물량 대부분은 인천항을 통해 해외로 나간다. 지난해 인천항에서 수출된 중고차는 40만8898대로 전국 수출량의 87.7%를 차지했다. 올해 1~10월 중고차 수출대수는 약 32만6788대로 올해 중고차 수출도 호조를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기 둔화로 최근 중고차 수요가 크게 늘어난 러시아를 비롯해 중남미,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등 수출국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지자체 사업 뛰어들지만 해결 문제 ‘산적’

중고차 수출 규모가 증가하다 보니 인천시뿐만 아니라 군산 새만금, 포항 영일항, 강원 동해항 등 항구 시설을 갖춘 지방자지단체들도 중고차 수출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수출 중고차업체들은 지자체들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해운 운임이 치솟은데다 물량을 실을 배를 구하기 어려운 점이 대표적인 예다. 중고차 수출 계약은 이뤄졌지만 선복 부족으로 중고차가 해외 현지로 도착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 컨테이너 화물선과 달리 자동차는 전용선이 필요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선복을 늘리기가 상당히 어렵다. 선적비도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4배 가량 올랐다.

유재선 한국수출중고차협동조합 이사장은 “수요도 충분하고 판로도 있는 상황인데 차량을 수출할 방법이 없어 난감한 상황”이라며 “중고차 수출업체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차량 가격을 낮추고 운임비용을 부담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면서 버티다가 폐업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자동차 운반 선박 지원 등이 절실한데 코로나19 사태 후 지금까지 지자체나 관련 기관에서 마스크 한 장 지원해준 적이 없다”고 토로했다.

중고차 수출단지 조성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되는 점도 문제다. 인천 스마트오토밸리 조성이 추진되고 있지만 4000억원 이상의 사업자금과 사업참여자 들의 규모, 사업의지, 주민민원 등 해결할 난제가 많은 상황이다. 해외 중개인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하지 못해 거래를 지속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비대면으로 차량을 판매할 수 있는 루트와 거래 시스템이 미흡한 탓이다.

김종남 카비전 대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거래 플랫폼의 필요성을 느껴 자체적으로 플랫폼을 만들어 거래했는데 중고차 수출업체 대부분은 그러지 못했다”며 “거래 플랫폼을 마련해도 차량을 평가하는 공신력 있는 체계와 결제 시스템이 없어 사기 위험을 감수하며 모험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중고차의 거래 때 성능점검기록기록부가 의무화돼 있지만 수출 중고차의 경우 차량의 상태를 평가할 수 있는 기준자체가 없다. 유 이사장은 “차량 품질보증이 확실하면 소비자가 더 많이 사게 된다”며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공신력 있는 차량 진단 시스템과 거래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현장에서 불법으로 이뤄지는 정비나 차량 해체 작업도 제도권으로 유도해야 한다”며 “중고차수출 분야를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성장 동력을 마련하고 선진화된 모델을 접목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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