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된 가상세계...인간의 감각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아트선재센터 기획전 '호스트 모디드'
"신체 둘러싼 물리적 조건 그대로지만 인식 달라져"
  • 등록 2021-05-24 오전 6:00:00

    수정 2021-05-24 오전 6:00:00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요즘 세대는 가상 세계 등 화면 속 공간이 현실 세계보다 익숙하다. 이들이 세상의 주류로 성장하면서 공간·현실 감각의 개념에 변화가 관측된다.

코로나19로 화상 수업이 일상화 되고 있고, 영유아기부터 유튜브를 통해 받아들이는 정보도 많으며, 게임을 하면서 평면적인 화면 안에서 펼쳐지는 유사공간에 대한 경험이 끊임없이 축적되면서다. 인간의 신체를 둘러싼 물리적 조건은 변하지 않았지만, 우리의 인식은 과거와는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시셀 마이네세 한센 ‘최종 사용자의 도시 2077’(2019/2021), 컴퓨터 이미지, 조이스틱, PC, 영상, 사운드, 12분.(사진=시셀 마이네세 한센)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가 20일부터 7월 11일까지 여는 기획전 ‘호스트 모디드’는 이 같은 변화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전시 제목은 주인, 주체의 의미를 갖는 ‘호스트(host)’와 게임이나 자동차, 프로그램 등의 작동 메커니즘을 임의로 변형한 것을 의미하는 신조어 ‘모드(modded)’를 합성한 것이다. 공간을 인지하는 감각이 언어의 변화나 경험의 차이로 인해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감시 기술 전문가이자 최고경영자인 알렉스 카프(Alex Karp)의 목소리와 유명 배우 키아누 리브스의 얼굴을 한 남성이 화면 속에 자리잡고 있다. 남성의 몸에는 이건희, 스티브 잡스 등 전 세계 CEO들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TV 앞에 놓인 조이스틱을 관객이 직접 조작하면 영상이 시작된다. 영상 속 등장인물은 언뜻 보면 사람처럼 보이지만 2077년의 리얼돌이다. 이들은 인공적이고, 반사회적이며, 임시적인 신체성을 가져 당연한 신체를 낯설게 만든다. 이 형상들은 인간의 가장 내밀하고 원초적인 신체적 행위에 대한 감각의 변화와 변이된 인지를 징후적으로 드러낸다.

작품은 덴마크 작가 시셀 마이내세 한센의 ‘최종 사용자의 도시 2077’다. 작가는 키아누 리브스가 출연한 영화 ‘매트릭스’(1999)를 기반으로 이 배우가 가진 인상과 상징성을 이용해 게임 산업에 나타난 자본의 권력과 감시 기술이 가진 치명적인 힘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비자를 지칭하는 ‘최종 사용자’인 우리가 사용자 동의(End-user license agreement) 문구에 대해 습관적으로 동의하는 과정에서 개인정보가 자연스럽게 자본화되고, 이익 창출을 위한 소비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공간을 다르게 인지하게 된다는 것은 나아가 현실을 인지하는 것에 변화를 가져온다. 전시는 그동안 일반적인 것으로 간주해 온 감각이나 신체성에 대해 재고하고, 기술의 발달에 따라 다른 인지를 가진 인간이 된 것이 아닌지 질문한다. 과거와 미래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가상 세계가 펼쳐지는 영화가 쏟아지면서 사람들은 실제를 인지하는 감각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시셀 마이네세 한센과 미국 작가 레이첼 로즈, 그리고 김지선이 공간 또는 현실을 인지하는 방식에 대해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는 다양한 영상 및 설치 작업으로 이번 전시에 참여한다.

전시를 기획한 전효경 아트선재센터 큐레이터는 “1948년에 만들어진 ‘글라스 하우스’와 2006년에 단종된 ‘아이보’, 1996년에 처음 만들어진 ‘리얼돌’과 같이 달라진 감각을 대변하는 신체성의 예는 이미 새로운 것이 아니다”며 “이제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시공간의 환영을 도구로 사용하면서 변화의 당연함을 공고히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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