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흥행을 예감했지만, 이 정도 인기일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뮤지컬 ‘시카고’ 얘기다. 제작사인 신시컴퍼니 관계자들조차 “티켓 예매 사이트에서 ‘매진’이 뜰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고 말할 정도다. 지난해 코로나19로 뮤지컬 ’맘마미아!’, ‘고스트’,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 ‘렛미인’ 등이 잇따라 중단·취소되며 어려움을 겪었던 신시컴퍼니로서는 기분 좋은 당황스러움이다.
|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뮤지컬 ‘시카고’ 시즌별 관객 수(자료=신시컴퍼니, 단위= 회, 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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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한국 공연 21년째인 ‘시카고’는 12번의 시즌 동안 총 809회 공연해 누적 관객 수 93만182명(2000년 초연· 2001년 앙코르 공연·2003년 영국투어팀 공연은 관객 수 미집계)을 기록한 ‘스테디셀러’다. 하지만 이번 시즌의 인기는 유별나다. 신시컴퍼니에 따르면 이번 시즌 ‘시카고’는 지난 2일 개막 후 17회 공연해 1만3374명(16일 기준)의 관객을 모았다. 객석 점유율은 무려 98%로, 사실상 ‘전석 매진’이다. 특히 코로나19로 공연계가 잔뜩 움츠러든 가운데 거둔 성적이기에 더 놀랍다.
이번 시즌 ‘시카고’의 매진 사례가 남다르게 다가오는 것은 이 작품이 성공하는 뮤지컬에서 보이는 일반적인 ‘흥행 공식’을 따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시카고’에는 화려한 무대나 의상은 물론,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선서하는 시원한 고음 넘버(노래)도 없다. 극의 내용은 살인, 욕망, 부패, 폭력, 착취, 간통, 배신 등 사회의 치부를 들춘다. 여기에 극 전반에 흐르는 농염하고 섹시한 분위기로 인해 ‘시카고’는 중·장년층이 주로 소비하는 작품이었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의 시즌을 짧고 굵게 공연했다. ‘시카고’가 명성에 비해 누적 공연 횟수· 관객수가 적은 이유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뮤지컬 주소비층인 2030 여성들을 비롯해 젊은 관객들이 객석을 가득 메우고 있다. 신시컴퍼니 관계자는 “관객층이 젊어진 것이 확연하게 보인다”면서 “황금 만능주의, 외모 지상주의, 형법 제도의 모순 등을 비꼬는 ‘시카고’의 풍자와 위트, 비판이 세대를 초월해 공감대를 얻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1920년대 미국의 어두운 현실에 대한 통렬한 사회 풍자가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아 젊은 층을 공연장으로 불러모으고 있다는 설명이다.
‘시카고’의 흥행 이유를 코로나19 상황과 연관지어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공연 관람 횟수가 줄어든 만큼, 수년간 공연하며 대중성과 작품성을 검증받은 일부 작품에 관객들의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시카고’에 앞서 ‘위키드’, ‘맨 오브 라만차’ 등 소위 ‘믿보’(믿고 보는) 작품들에서도 ‘피케팅’(피 튀기는 티케팅)이 벌어졌다. 이에 반해 신작 등 관객들이 익숙하지 않은 작품의 경우 객석 채우기가 쉽지 않아 공연계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한편 ‘시카고’는 동생과 바람난 남편을 살해한 보드빌(통속적인 희극과 노래, 춤을 섞은 쇼) 가수 벨마 켈리, 불륜남을 살해한 코러스걸 록시 하트가 선정적인 이슈를 쫓는 언론과 배심원을 유혹해 무죄를 선고받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번 시즌에는 최정원, 윤공주, 티파니 영, 아이비, 민경아, 최재림, 박건형, 김영주, 김경선, 차정현 등이 출연한다. 오는 7월 18일까지 대성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관람료는 6만~14만원.
| 뮤지컬 ‘시카고’에서 벨마 켈리 역의 윤공주(왼쪽)와 록시 하트 역의 민경아가 연기하고 있다(사진=신시컴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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