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운동 과정에서의 투옥과 명문대 제적, 인권변호사와 시민운동가 등 순탄치 않은 길을 걸어온 박 시장이었지만, 최초로 서울시장을 3연임하며 범여권에서의 대선 주자 중 한 명으로 거론돼 온 만큼 그의 비극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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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시장은 1956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13세 때 작은 할아버지의 양손으로 입양되는 등 부유하지 못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이후 전국 최고 수재들만 모인다는 서울 경기고를 졸업하고 1975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지만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시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투옥돼 1학년도 채 마치지 못하고 제적 당했다.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듯 힘든 시험에 합격한 뒤로도 순탄한 삶을 살지 못했다.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로 임용된 후 1년 정도 일했지만 6개월 만에 사표를 던지고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이후 권인숙씨 성고문 사건 등을 맡아 인권변호사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시민운동에 관심이 컸던 박 시장은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지내고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총선시민연대 상임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아 부패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낙천 및 낙선운동을 이끌었다. 2001년에는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 등 시민단체를 설립해 기부와 나눔문화를 확산시키는데 애썼다.
‘국정의 축소판’으로도 불리는 서울특별시정을 올해까지 10년간이나 경험하고 지난 415 총선에서는 일명 박원순계로 불리는 인사 10여명이 대거 국회로 입성하면서 당 안팎에서 대권 주자로서의 입지를 굳혀왔다.
박 시장은 지난 6일 민선 7기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대선은 자기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안 되고 싶어도 하게 되는 운명적인 직책“이라고 언급하며 대권을 향한 식지 않은 열망을 드러냈지만, 결국 여비서 성추행 사건으로 경찰에 고소된 후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