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섀도보팅 폐지 직전인 2017년 정기주총에서 선임된 감사의 임기가 올해 주총에서 대거 만료되는 데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이 벌어지면서 소액주주들의 주총 참석은 더 뜸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의결권 대행업체의 대행가격은 작년보다 2~3배 이상 뛰었다. 웬만한 코스닥 상장사들은 비용부담에 선뜻 의결권 대행업체를 쓰지 못하는 상황이다. 전자투표 도입이 확산하고 있지만 소액주주의 자발적인 참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푸념이 나온다.
상장사들은 3%룰을 통해 대주주를 견제하려는 바람에 실질적으로 견제 역할을 하는 감사나 감사위원회를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며 룰을 완화하는 등 현실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올해 코스닥 감사 수요 1600명 웃도는데
8일 코스닥협회에 따르면 올해 554곳 상장사의 주주총회에서 1666명의 감사(위원) 선임안이 상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12월 결산 코스닥 상장사 1244곳의 43.7% 수준이다. 지난 2017년 정기 주총에서 선임된 감사들이 대거 임기만료되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자산총액 1000억원 미만 상장사(비상근 감사 선임)를 제외하더라도 1000여명이상의 상근감사나 감사위원을 선임해야 하는 것이다.
감사나 감사위원 선임의 경우 대주주와 주요주주 의결권이 3%로 제한되는 만큼 여타 주주들을 확보해 의결정족수(25%)를 맞춰야 하는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자산총액 2조원이 넘는 하림(136480)의 경우 지난해 주총에서 의결정족수 미달로 감사위원 선임에 실패했다. 오는 30일 열리는 주총에서 다른 2명의 감사위원을 선임할 예정이지만, 의결정족수를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좁은 장소에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도 꺼리는 데다 전자투표 참여율은 턱없이 낮다.
한 상장사 관계자는 “의결권 수거업체 견적을 복수로 받았지만, 결국은 포기했다”며 “수천만원을 웃도는 비용때문에 쓸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다른 회사 관계자는 “2~3년 전만 해도 한 주당 30원정도였는데, 지금은 기본 최소 단위가 2000만~3000만원이고, 의결권 수가 늘어나면 추가로 금액을 요구한다”며 “업체들이 감사 선임하는데 어려움이 크다”고 했다.
감사선임 포기 잇따라
이에 따라 감사선임을 아예 포기하는 상장사도 잇따르고 있다. 한 의결권 대행(수거)업체 업체의 대표는 “섀도보팅제 폐지로 인해 2018년부터 의결권 대행 문의가 매년 20~30%씩 늘어나고 있다”면서도 “실제 대행을 맡기는 경우는 많지 않고 대부분 가격 때문에 감사 선임을 포기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포기가 가능한 것은 현행 거래소 규정상 사외이사 선임이나 감사위원회 구성을 못 할 경우 관리종목에 지정되지만, 전자투표를 도입하고 주주총회 분산개최 요건이나 기관 투자자 의결권 행사 권유를 할 경우 시장조치를 면제(관리종목 미지정)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상법은 감사(위원)을 선임하지 못하면 최대 5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지만, 아직까지 과태료를 부과받은 기업은 한 곳도 없다.
이에 따라 하림 등 지난해 감사위원 선임이 부결된 상장사들에 실질적인 불이익은 없었다. 감사(위원) 선임이 불발될 경우 기존 감사가 새로운 감사가 선임될 때까지 업무를 지속할 수 있다. 우스갯소리로 `종신감사`라는 얘기가 나온다.
코스닥협회 관계자는 “기관투자자가 별로 없고 주식분산이 많이 돼 있는 코스닥기업에도 3%룰을 일괄적용하다 보니 의결정족수 미달에 따른 감사선임안 부결 비율이 높다”고 설명했다. 사외이사 선임이나 감사위원회 구성 실패에 따라 시장조치를 남발할 경우 결국 주주인 투자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어 거래소도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코로나19에 주총 불성립 우려도
상황이 이런데도 법무부 등은 3%룰에 대해 강경한 입장이다. 전자투표를 독려하고, 기관들의 의결권 행사를 촉구하는 등 백방으로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녹록지 않다.
금융위 관계자는 “3%룰로 인해 상장사들이 겪는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금융위 차원에서 3%룰의 개정 등에 대해 검토하거나 할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주총 참석률이 더욱 떨어질 수 있어 전자투표를 적극 도입하도록 권고하고 기관들의 의결권 행사를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전자투표 도입 효과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정기주총에서 전자투표 도입 상장사는 전체(2302개사)의 24.5%인 563개사였고, 전자투표 참여율은 5.04%에 그쳤다.
국내 주식투자자의 손바뀜이 너무 빨라 전자투표나 주총 참여 유인이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유가증권 상장사의 경우 국내 기관, 외국계 투자자 등의 보유기간은 꽤 길다”며 “반면 국내 개인들이 많은 코스닥사들은 이미 주식을 팔고 보유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실제 3월 주총 참석대상 주주는 12월 31일을 기준으로 하지만, 두 달여 지난 현재까지 주식을 들고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한 의결권 대행사 대표는 “전자투표로 쉽게 의결권 행사를 할 수 있어도 소액주주 입장에서는 주가가 관심이지 감사선임 여부가 무슨 상관이냐고 되묻는 경우가 많다”며 “혹시라도 주가가 떨어져 손해를 봤다면 전자투표로 모든 안건에 화풀이성 반대표를 던지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신외감법 등 회계 투명성 강화 트렌드와 3%룰이 배치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스닥협회 측은 “회계투명성 강화에 맞춰 보다 역량 있는 새로운 감사를 선임하고 싶어도 의결정족수 미달로 부결된다”며 “3%룰이 회계투명성 강화를 막고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3%룰이 대주주의 전횡을 막기 위한 취지지만 상장사들이 매년 주총을 열어 결산하고 마무리해야 상장사로 유지된다”며 “몇백개 회사가 감사 선임을 못하는 상황이라면 법리적인 모순이 있다는 의미여서 균형을 맞추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