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 칼럼] ‘법률 장사꾼들’

  • 등록 2016-05-13 오전 6:00:00

    수정 2016-05-13 오전 6:00:00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가 점차 베일을 벗고 있다. 해외원정 도박혐의로 구속기소된 피의자가 구치소에서 자신의 변론을 맡은 여자 변호사를 폭행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 사건이다. 자신을 빼달라는 조건으로 거액의 수임료를 전달했으나 뜻대로 처리되지 않은 데 대해 불만을 품고 주먹을 휘두른 것이다.

지금껏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기가 질릴 만하다. 두 사람 사이에 건네진 수임료가 자그마치 50억원이다. 보석을 추진하다가 어려워지자 30억원을 돌려주었다지만 그 정도로도 일반 월급쟁이들은 평생 모으기 어려운 돈이다. 다른 피의자로부터 받았다는 별도의 50억원은 따질 것도 없다. 역시 ‘금수저’들 사이에 오가는 금액은 단위부터 다르다.

이 돈으로 재판부에 청탁 시도가 이뤄졌다는 정황이 더욱 충격적이다. 사실 여부는 더 가릴 필요가 있겠으나 현재 검찰이 판단하는 내막이 그러하다. 당사자가 변호사이면서도 변호사법 위반혐의로 영장이 청구된 것이 그런 배경이다. 구형량을 낮추려고 사법연수원 동기인 부장검사와 접촉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물론 구명 로비는 성공하지 못했고 피의자와 마찰이 빚어진 게 그런 결과다.

하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평소 검사와 재판부, 변호사들 사이에 사건을 놓고 짬짜미 흥정이 이뤄지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학연이나 지연을 매개로 하는 법조계 내부의 연결고리가 그것이다. 여기에 덧붙여지는 게 거액 수임료다. 이를테면, 갖은 인맥을 내세워 먹이사슬이 갖춰지는 셈이다. 바깥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을 뿐이다.

법조계에 뿌리깊은 전관예우 자체가 관행적인 유착관계에 기인한 것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법원이나 검찰이 전관출신 변호사가 맡은 사건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너그러이 처리해주기 때문에 생겨난 폐습이다. 형사·민사사건 구분없이 소송 당사자들이 엄청난 수임료 부담을 무릅써가며 전관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사건에 등장하는 검찰 출신 변호사도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변호사 사무실을 열고 한 해에 수임료로 받은 금액이 90억원을 넘었다는 사실을 전관예우와 떼어놓고 생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사건에서 다투는 내용보다 누구를 변호사로 선임했느냐에 따라 판결이 달라진다면 그것은 올바른 처사가 아니다. 극히 일부 사례에 불과하겠으나 이러한 연결고리가 존재한다는 자체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안타까운 현실을 반영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에서 법조인들만큼 융숭한 대접을 받는 부류도 드물다. 사법고시에 합격하는 것만으로도 신분이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학부모들의 지나친 교육 열기나 학군 배치에 따른 부동산 과열현상도 결국은 자식을 법대나 의대에 보내려는 뜻에서 빚어진 것이다. 변호사가 넘쳐난다는 요즘도 거의 달라지지 않은 현상이다. 오죽하면 법조계 주변의 브로커들까지 어깨에 힘을 주는 것이 보통이다.

로스쿨 입학을 둘러싼 여러 잡음이 들려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합격자 중에는 자기소개서에 할아버지가 대법관이라는 사실을 밝힌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판사나 검사가 선망받는 직업이기도 하려니와 머리가 뛰어난 사람들이 법조계에 몰린다는 점에서 그 울타리에 든다는 것만으로도 부러움을 살 일이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상층부를 구성하는 법조인들이 한낱 ‘법률 장사꾼’으로 전락하고 있는 모습은 안타깝기만 하다. 오로지 ‘법의 정의’만을 부르짖으라는 거창한 얘기가 아니다. 재판을 돈다발로 흥정하려는 무리한 시도로 스스로 ‘악마의 대변자’가 돼서는 곤란하다. 아직 시작 단계인 이번 사건이 시사하는 교훈이다. <논설실장>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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