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탄생 100주년]③86년 생애 이룬 것들

중동 건설시장 개척, 첫 국산차 개발, 88올림픽 유치
  • 등록 2015-11-24 오전 4:30:00

    수정 2015-11-24 오전 4:30:00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일평생 한 사람이 해낸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것을 이뤘다. 말년에는 정치에 입문해 대선에 나서고 대북사업을 벌이는 등 기업인의 한계도 뛰어넘었다. 해체 직전이던 1990년대 말 현대그룹은 거의 모든 업종을 아우르는 83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1위 그룹사로 성장했다.

소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그가 1996년 노벨 경제학상 후보로 추천된 것은 이 같은 업적 때문이었다. 그의 추천장에는 ‘맨손으로 세계 굴지의 기업을 이룩한 주인공으로, 한국의 경제 부흥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적혀 있다.

그의 성공은 개인에 그치지 않고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특징도 있다. 현대건설은 유일한 해외 고속도로 건설 경험으로 경부고속도로의 5분의 3을 건설했다. 건설이 조금만 늦어졌더라도 완공은 불가능했다. 1970년 경부선 완공 직후 중동 석유 파동이 터졌고 글로벌 경기는 얼어붙었다. 오일 쇼크를 오일 머니로 대체한 1970년대 중반 중동 건설시장 진출로 만회한 것도 정 회장의 현대건설이었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산업항 공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현대건설은 1970년대 오일 쇼크로 극심한 경기침체를 맞자 ‘오일 머니’를 벌어들이기 위해 중동 플랜트 사업에 진출했다. 현대자동차그룹 제공
수십년 동안 대한민국을 중공업 강국으로 군림케 한 조선사업도 그의 추진력이 없었다면 해내기 어려웠다고 많은 경영인과 경영학자가 말한다.

현재 시점에서 그가 일궈낸 가장 큰 성과는 미국 포드자동차의 유혹을 뿌리치고 자동차 독자 개발을 시작한 것이다. 기술력 제공과 해외 시장 제제라는 포드의 당근과 채찍 앞에 선 그는 독자 기술 개발이라는 제 3의 길을 택했다. 이는 오늘날 현대·기아차의 밑거름이 됐다.

정 명예회장의 차남인 정몽구 회장이 이끌고 있는 현대자동차그룹은 일본 도요타, 미국 GM, 독일 폭스바겐, 르노-닛산에 이은 세계 5대 자동차 회사로 성장했다.

정 명예회장을 10년 동안 보좌했던 박정웅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상무는 회고록에서 “정 회장이 없었다면 오늘날 한국 경제의 위상은 어떤 위치에 놓여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그가 1974년부터 1984년까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으며 일궈 놓은 한국 브랜드 인지도와 88올림픽 유치 역시 역사에 남을 쾌거로 평가받는다. 현재는 크고 작은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끊겨 있지만, 그가 말년에 물꼬를 튼 대북사업은 남북 경제협력의 사실상 유일한 창구로 남아 있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가운데)이 1999년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현대그룹은 98년 금융위기로 경영난을 겪은 기아차를 인수했고 이는 현대자동차그룹을 세계 5대 자동차 회사로 이끄는 밑거름이 됐다. 그의 오른쪽이 정 명예회장의 차남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다. 현대차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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