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까지만 해도 사모펀드들은 거침이 없었다. 올초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발생했을 당시부터 사모펀드의 차입매수(LBO)에 대한 경계감이 제기됐지만 펀드들은 천문학적 규모의 초대형 딜로 시장에서 맹위를 떨쳐나갔다.
글로벌 주식시장은 이들의 과감한 행보를 보면서 `아직은 유동성에 이상없다`는 믿음을 갖고 M&A 모멘텀을 맘껏 즐겼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증시가 최근까지 사상 최고치 기록을 갈아치웠던 주요 배경중 하나가 바로 `M&A 붐`이었다.
◇낙관론자들은 틀렸다..사모펀드 `진퇴양난`
실탄이 부족해지면서 겨우 잡아놓은 사냥감을 도로 풀어줘야 할 형편이 됐기 때문이다. 글로벌 주식시장 폭락으로 이미 M&A에 합의한 기업들의 주가가 크게 하락하면서 일부 거래는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여파로 신용경색 우려가 확산하면서 LBO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서브프라임에 투자한 헤지펀드들은 대규모 손실과 환매요구에 시달리며 무더기로 나자빠지면서 시장여건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만약 먹잇감을 포기하지 않고 밀어부쳤다가 상황이 더욱 악화된다면 사모펀드 자신들의 운명도 어찌될지 모를 상황이다.
사모펀드 매니저들은 약세장에 대한 예측으로 유명한 `닥터 둠(Dr. Doom)`의 기분나쁜 전망을 곱씹고 있다. 지난 1987년 미국 주식시장의 `블랙먼데이`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정확히 예측해 주목받았던 마크 파버는 최근의 증시 폭락은 증시가 고평가됐다는 것과 함께 LBO 시장이 꼭지에 이미 다다랐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신용경색 여파 갈수록 뚜렷..현실화된 `M&A 지연`
투자자들이 차입매수를 위한 채권 및 대출에 투자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이미 몇몇 거래가 지연되고 있다. 세계 최대 제과업체인 영국 캐드버리 슈웹스는 미국 음료 자회사 매각을 연기했다. 영국의 버진 미디어도 지난 8월7일 한달내 주가가 19%나 폭락한 후 회사 매각을 연기했다.
이뿐 만이 아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론스타 펀드도 어크레디티드 홈 렌더스 인수가 완료되지 못할 수 있다고 밝혔다. 론스타는 "어크레디티드 홈 렌더스가 공개매입을 완료할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라며 "인수하겠다고 발표한 후 어크레디티드 홈 렌더스의 금융과 운용 상황이 심각하게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자산을 팔겠다고 했던 기업들은 상황이 바뀐 만큼 가격을 깎겠다는 분위기다. 미국 최대 건설자재 유통업체인 홈디포의 경우 지난 6월 사모펀드 베인 캐피탈과 칼라일 컨소시엄에 103억달러에 팔기로 한 도매 건설공급 사업부의 매각 가격을 낮추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LBO 대상 기업 주가 `형편없다`..예정대로 진행될지 의문
이미 차입매수가 예정돼 있는 기업들의 주가는 곤두박질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시장과 업계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초대형 M&A가 예정대로 진행될 지는 갈수록 불투명해지고 있다.
콜버그 크래비스 로버츠(KKR)와 텍사스퍼시픽그룹(TPG)이 주당 69.25달러에 인수하기로 한 텍사스 최대 전력업체인 TXU는 10일 63.65달러에 마감됐다. 해당 주가는 지난달 6.6%나 떨어졌다. KKR은 2월 하순 텍사스 지역의 최대 전력회사인 TXU를 450억 달러에 인수하는 사상 최대의 거래를 성사시키며 주목을 받았지만 이제는 골칫거리를 떠안게 됐다.
학자금 대출업체인 샐리매(SLM)의 주가도 지난달 기록한 올해 최고치에서 현재까지 17%나 하락했다. 사모펀드 JC 플라워즈 앤 코와 프리드만 플래쳐 앤 로웨, JP모간,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지난 4월 샐리매를 주당 60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KKR이 지난 7월10일 주당 34달러에 인수하기로 한 퍼스트 데이타도 합의한 이래 주가가 5.1%나 떨어졌다.
체스트너트 힐 파트너스의 폴 세셰 운용 파트너는 "시장이 타이트 해지면서 기업들은 어떤 것을 버리고, 어떤 것을 취해야 할지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M&A붐 정점 지났나..하반기 거래 부진 예상
투자자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관련된 신용시장의 손실로 우려하면서 투자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는 상황에서 상반기 활황을 보였던 M&A 시장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기업과 사모펀드들은 올해 현재까지 사상 최대인 3조1700억달러의 M&A 거래를 발표했다. 이 중 LBO를 통한 것은 7126억달러에 달한다.
하지만 KPMG 인터내셔널의 조사결과 전세계 M&A는 올해 나머지 기간 동안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주피터 에셋 매니지먼트의 에드워드 본햄 카터 최고경영자(CEO)는 "투자자들은 상황이 전개되면서 향후 몇 개월 동안 시장이 변동적일 것으로 예상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M&A붐을 꺾을 수 있는 요인으로 성장률 둔화, 대출시장 침체, 유동성 압박 등을 꼽아왔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장이 신용경색 위기로 치달으면서 이같은 시나리오는 현실화되고 있다.
사모펀드들이 희망을 걸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중앙은행의 금리인하 카드. 긴급지원에 나선 중앙은행들이 통화완화 카드를 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M&A나 바이아웃 열기가 예전같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 고민을 깊게 만들고 있다.